윤하 소극장 콘서트 <빛나는 겨울> 후기
겨울은 흔히 시련의 계절로 비유되지만, 가장 정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빛나는 것들이 잠시 숨을 죽이고, 오직 내면의 온기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
지금 옆사람을 만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매년 겨울 윤하를 찾는다. 브런치에 몇년 전 쓴 후기 <남친따라 맨앞 중앙에서 윤하 콘서트 본 여친 후기>는 여전히 내 작은 채널에 가장 자주 찾아지는 글이다. (지금은 브런치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쓴다.) 그 때는 머글이라 적었지만, 이유가 어떻던 간에 벌써 5번째 콘서트면 윤하가 바란다던 세포 분열에 성공했다 할만 하겠다.
지금까지 올림픽공원 같은 대형 콘서트만 찾았었다. 소극장 무대는 윤하 뿐 아니라 그냥 처음이었다. 유독 추운 일요일이었다. 이가 시려 생존을 위해 붕어빵을 사고, 붕어빵은 순식간에 식어 우연히 따뜻하고 매력적인 찻집을 발견한 날이었다. 20대때 늘 머물던 찬란했던 이대의 거리가 이토록 황량해진, 그 때 좋아했던 추억의 가게들이 다 임대 딱지가 붙어버린 무색한 시간을 새삼스러워 하면서.
ECC에 들어드는 순간부터 어렴풋한 스물한살이 소환되어 아릿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홀의 무대에서 지금은 주제도 기억이 안나는 어떤 마케팅 대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었다. 아마 수상은 못했을 거고, 며칠은 실망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때 꿈꾸던 것처럼 마케터로 입사를 했고, 지금은 뭐든 하는 잡부가 됐다.
“나, 아무래도 학교 가야할 것 같아“
“가 그럼”
소극장이라기엔 조금 더 호화스러운 소극장이라. 빽빽한 자리를 꽉 채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공연장 정 중앙 자리에 앉았다. 윤하는 비행기 모드를 켜둔 채 구름 위를 부유하는 도파민 디톡스 사색의 시간을 의도했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의 의도는 어느 때보다 뾰족하게 적중했다. 소음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잠시 격리된 안전한 고립의 텔레포트였다. 다만 푸른 조명이 조금 눈이 부신.
윤하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인상 깊은건 악기 세션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콘서트를 다녀봤지만, 이토록 리사이틀도 아닌데도 악기 세션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들은 공연은 없던 것 같다. 예민한 청각 탓에 일렉트릭 기타의 날 선 소리에는 쉽게 피로를 느끼곤 했는데, 이날의 소리들은 높게 깔린 안개처럼 몽환적으로 객석을 감싸 안았다. 본인은 긴장한다 했으나, 내가 느끼기로 윤하는 큰 공연 때보다 더 편안하게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편하고.
소수자인 NT 여성 특유의 테토 바이브, 수상하게도 우주 세계관에 매료되는 것, 도구보다 창작의 메시지에 몰입하는 것. 윤하가 스타로서 무대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면, 나는 회사에서 일하며 언젠가 빛날 나만의 성소를 창작하고, 가끔 글이나 좀 쓰고 AI하고만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강의 조금 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윤하의 공연을 갈 때 만큼은 어떤 노래를 들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이 구축하고 싶은 세계관이 무엇일지 기대하며 간다.
이번 소극장 공연의 주된 테마는 “지금 겨울을 보내는 이들에게 빛날거라 읖조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멘트보단 음악으로 진정성 있게 채울 것이라는 책임이 느껴졌다.
그녀가 표현한 겨울 대신, 요즘 나는 “누구에게나 밤은 찾아온다”는 표현을 많이 쓰곤 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불안이라는 얇은 이불을 덮고 간신히 잠을 청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회사 자리에서 공황 발작이 왔고, 이틀에 한번 꼴로 누가 보던 말던 아무데서나 울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봉은사에서 초를 켜고 집착을 내려놓게 해달라, 이제는 동이 트게 해달라고 비는, 율리안나였다.
‘느린 우체통’이 흘러나올 때 갑자기 당황스런 눈물이 터졌다. 며칠 전, 1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썼다. 이 밤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빠른 우체통’이었던 셈이다. 마치 우주가 윤하의 목소리를 빌려 내게 "이제 괜찮다, 곧 동이 틀 것이다"라고 시그널을 주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바로 이 장소에서 발표하며 빛나던 과거의 기억과, 그게 빛나는 줄도 모르고 불안해하던 젊은 날의 내가 현재의 나를 위로하러 온 것 같기도 했다. 입상과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마케터가 됐듯이, 목표를 이루고도 다른 길로 선회하듯이, 어쩌면 지금의 이 밤 또한 훗날 돌아보면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다.
그렇게 거의 끝날 때까지 콧물까지 간헐적으로 계속 새어나왔다.
옆사람이 건내준 하얀 티슈 두장은 축축하고 꼬질꼬질하고 너덜거렸다.
“왜 울었어?”
“나도 밤을 지나고 있으니깐. 뭐랄까 슬퍼서 울었다기보다, 특정 가사에 꽃혀서라던가 그런건 아니야.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까 그 에너지가 공명한 거 아닐까?”
“내 옆사람도 남잔데 계속 울더라고. 사실 나도 예전에 윤하 소극장 콘서트 때 울었던 것 같아. 그 때가 윤하가 힘들었을 때거든.“
조금 전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노래하던 그녀의 실루엣이 내 삶의 궤적 위로 겹쳐졌다.
"애초에 레벨 점핑권을 물고 태어났다던가, 목숨이 여러개라던가 뭐 그런 사기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퀀텀 점프 하려면 필연적으로 밤의 시간을 걸고(bet) 걸어야(walk) 하는 것 같아."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무리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힘을 갖고 운좋게 탄생한 이들도 존재하지만, 스스로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밤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밤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빛의 높이만큼 깊어지는 법이며, 그 시간을 건너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밀도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다. 점핑권 없이도 묵묵히 겨울을 걸어온 그녀가 지금 다른 겨울러들에게 공명의 시공간을 비춰주는 건 낭만이었다.
카타리나 자매라는 윤하가 농담처럼 던진 사주 이야기에, 살다보면 삼재니 살이니 그런게 있지 않냐고 던지는 말에 많이 반가웠다.(TMI: 사주 개발하는 염주찬 율리안나) 내가 지금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 두 개가 모두 별과 운명, 자아성찰 뭐 그런 것들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때로 누군가의 목소리로, 숫자로, 현상으로, 단어로 이스터 에그 같이 답을 준다. 타인은 그저 우연이라 치부할지 몰라도, 나는 이것이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연결망이라 믿고 산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매일 같이 그런 신호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맛으로 게임처럼 삶을 산다.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추운 길부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오늘까지, 윤하의 소극장 콘서트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하고 있는 프로덕트에 미래의 내가 겨울을 지나는 지금의 나에게 건내는 편지를 만들어주는 컨텐츠 하나를 추가했다.
원하는 삶을 더 과감하게 저질러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사실 이 글도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에 쓰고 있다. 줄곧 실용적인 글만 주구장창 썼는데, 사실 내가 진짜 쓰고싶은 글은 어루만지는 에세이다.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숙제를 적고 잠드는 밤, 우주는 어김없이 대답할 것이다.
겨울 밤에 놓인 불확실성은 사실 선물일지도 모르니, 사랑할 것이다.
이 밤이 지나면, 혹은 이 밤이 지나기 전이라 할지라도, 나의 겨울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으므로.
p.s. 모든 리뷰를 꼼꼼히 챙겨본다는 윤하가, 내가 만든 작은 소우주에 놀러오는 근사한 조우를 소망해 본다. saju.ai - 이건 2024년에 만든거라(소개 페이지 업데이트 안했다는 의미) 지금은 훨씬 더 예쁘고 귀엽고 정확하고 유용하고 따뜻하고 그렇습니다. 설 전 프리오픈 예정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