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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Dec 11. 2021

남친따라 맨앞 중앙에서 윤하 콘서트 본 여친 후기

지극히 머글스런 윤하 콘서트 END THEORY 후기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선물이라는 말에 잠시 혹시 내가 갖고 싶다고 했던 귀걸이던가 하고 쓸데없는 기대를 품었지만 왠걸.
주섬주섬 설레는 표정으로 그가 샘소나이트 가방에서 꺼낸건 윤하 콘서트 티켓 두장이었다.
무려 Vip석 1열 중앙이었다.☆


"윤하에 대한 너의 사랑은 잘 알겠다"

1열을 차지하기 위해서 어떤 치열함을 가져야 하는지.
덕력은 있으나 피켓팅에는 영 소질이없던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박효신 콘서트 티켓을 구해오는 남자라면 내 신념을 뚫고 결혼하겠다는 공약을 걸기도 했던 나였다.

이미 한 번 윤콘 앞자릴 예매하고선 콘서트 취소의 경험을 가진 그였기에 연달아 좋은 자리의 티켓을 거머쥔 그의 노력에 화답하기 위해
END THEORY 앨범을 트랙 넘버 순으로 여러번 돌려들었다.

슈카에 나온 그녀의 영상을 공유하고 각 곡마다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설명하는 해맑은 그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뿐이었다.

별 관심없는 척하면서 콘서트 전날 말했다.
"오르트 구름이 제일 좋은거같아 나는"
"나도"


몇년 만이었다.
콘서트의 성지 올림픽 공원.
입장 전 끼니를 떼우러 들어간 파리크라상에선 오랜만의 인파로 낯설어하는 직원들의 낮은 환호가 들렸다.
"와 오늘 장사 잘~된다. 아 오늘 콘서트 한대요"

긴 줄을 기다린 후 올림픽 홀에 들어갔다.
올림픽 홀에 들어섰던 옛 기억의 조각들이 공연장을 채운 먼지구름마냥 희미하게 떠다녔다.

생각이 났다.
내 윤하의 처음이 오늘은 아니었다.

2014년, 스윗어반나이트라는 해피포인트 고객 대상 콘서트에서 윤하를 처음 만났다.
7년이 지나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됐다.

7년 전과 많은 것이 달랐다.
옆자리엔 엄마 대신 서른즈음의 남자 하나가 내 손을 붙잡고 있었고
자리는 2층에서 플로어 1열로 승급했으며
공연장을 채우던 관중들의 함성은 마스크 너머로 새어나오는 먹먹한 발길로 바뀌었다.

수줍었던 가수 윤하는 핑크색 머리처럼 능청스럽게 노련해졌고
중앙 제어 응원봉은 신기하기만 했다.


다만 너무 급히 들어온 탓에 건전지를 챙겨오지 못했 찰나, 고 감사하게도 옆자리 팬분이 여분의 건전지를 건네 주셨다.

덕분에 맨앞에서 불꺼진 응원봉을 속절없이 흔들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콘서트 내내 은혜를 어찌 갚지 고민하다

끝난 후 출출할까봐 미리 사둔 스콘을 수줍게 건냈다.

난생 처음 경험한 맨 앞 중앙 자리는 특별했다.
웅장한 콘서트장에서 쉽게 소외되는 그림자가 보였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조명 꺼진 무대의 희미한 분주함이 느껴졌고
하이라이트 조명을 받지 않는 세션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었다.
조명과 스피커가 너무 직빵인지라 종종 눈을 감고 손으로 가려야 하는 사소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대로부터의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는 불편함의 값어치 정도는 너끈히 넘었다.

"여기 혹시, 세포분열에 성공하신 분 계신가요"
내 손을 붙잡은 남자가 신나게 보랏빛 응원봉을 들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너네둘. 맨앞에서 손 꼭 붙잡고 말이야. 누가 끌려온거에요?"
수줍게 나를 가리켰다.

그리곤 윤하가 날 보며 무릎을 바닥에 대었다.
애인이 다른 여자를 덕질하는 것에 대한 양해의 의미일까.
"보니까 어때요. 덕질할 만 해요?"
순간 감히 윤하의 낮은 자세를 만들어 황송해진 나는 손으로 Ok모양을 얼른 만들어 보였다.

이런 걸 보면 끼를 부린 것이 신경쓰인다나.
엉덩이를 한번만 흔들껄 그랬나 싶다는 그런 이야기.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말해 뭐해
당연히 잘 부르겠지.

반 머글인 나는 이 노래가 좋다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당장 알 수가 없어서 그게 좀 아쉬웠다.
콘서트 전에 나름대로 열심히 예습은 했지만 익숙한 노래가 나와도 그게 제목이랑 바로 바로 매칭이 안된달까.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같이 좋아하는 나로선
꿈같은 무대의 주인공이된 가수를 내내 동경어린 시선으로 감상했다.
어떤 콘서트던 그랬는데
윤하 콘서트는 우주를 모티브로 해서 그런지 더 그런 느낌이 강했다.

관중이 별을 바라보는 시선과
별이 관중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거리
그 거리도 윤하가 말한 행성과 위성의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히 별의 시선을 상상해보자면
수만명이 한 곳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나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부담일까 벅참일까.
별의 시선에서 바라본 관중석의 불빛은 황홀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관중 소리를 낼 수 없어도 나는 느낄 수 있다는 윤하의 말이 난 진심이라고 느꼈다.
왠지 모르게 후반부에서 윤하가 정말 아쉬워 하고 있다는 느낌을 표정에서 읽었다.
그리고 물론, 관중1이었던 나도 그 현장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꿈같았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풀렸는지 더  몰입감이 좋아졌다.
가장 좋았던 건 앵콜 파트 사이에
누우구도 앵콜 소리를 낼 수 없어 발맞추어 앵콜을 부르짖을 때의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중앙 무대에서 몸짓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모양이 재밌었다.
콘서트는 이런 맛이 아니던가.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관중에 공유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별들이 늘 갖고 있는 딜레마이자 고민일 것.
도대체 자신의 대중성이란 어떤 곡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청중에게 반문하는 그녀를 보며 본인의 줏대가 흔들리지 않기를 내 욕심으로 혼자 생각해봤다.

유튜브를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곤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남이 보고 싶어하는 것 사이의 갭을 좁히는 것.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위에서 바라는 일과의 다를 때 결국 회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에고가 강한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밀고 가는 방향을 지향하곤 한다.
물론 이 길은 수월한 길은 아니다.
늘 증명의 압박을 받고, 실패의 두려움 또는 결과에 직면하며, 타인의 조롱과 맞설 용기도 필요하다.

내 비록 윤하를 안 세월이 길지 않아
그녀의 음악 세계에 대해 곡과 앨범별로 상세한 감상을 적어 내릴 수 없어 머송한 마음이다.

그러나 내가 대중성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세상은 점점 파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스함을 지향하는 방향은 소수의 팬에게 확실하게 사랑받는 방향보다 실패할 확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음악이라기보단 요즘 흘러가는 서비스의 모양새가 그렇다.

사람들의 취향은 알고리즘에 의해 세분화되고 있다.
취향 중심의 개인화된 플레이 리스트가 멜론 인기 순위보다 힘이 세졌다.
물론 역주행을 하던, 넷플릭스 세계 인기순위에 오르던 압도적인 대중성을 확보하는 컨텐츠들이 있다. 그러나 요즘의 성공은 처음부터 대중성을 좇다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명확히 있었고 시대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만한 본질적인 서사와 감성을 타겟 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응당 돈쭐받을 자격이 있는 멋진 아티스트의 고민은 박수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성이라는 심판 앞에 본인의 길을 흔들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은 맞추는 일은 불가능 하다.
나는 윤하의 발라드 감성을 좋아해서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를 제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청량한 고음부가 강조된 '혜성'같은 노래를 원픽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 나는 윤하가 대중성과 본인의 길을 더 멋지게 조율할 것이라 믿는다.

노래 자체의 리뷰보다 삶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궁금하다던 윤하의 말처럼 리뷰를 썼다.

말할 수 없기에, 느끼기 위해 노력했던 관중의 에너지가 감사하고 특별했던 코로나 시국의 선물같은 콘서트였다.

p.s. 사실 윤콘 다녀와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핑크 머리 하고 싶다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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