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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Aug 07. 2021

휴가 끝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발행하는 글

멋진 글을 써야한다는 게으른 강박 내려놓기

아무 계획이 없어도 좋았다.

아무 계획이 없어서 좋았다.

단촐한 짐을 싸고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동서울에서 삼척가는 우등 버스였다.

운전을 할까 고민했지만 내 체력은 형편없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삼십평생 첫 동해 바다였다.


운좋게 당첨된 성수기 리조트였다.

입짧은 나는 맛집 같은건 관심없었다.

그저 쏠비치에 박혀있을 생각으로 빔프로젝터까지 챙겼다.

장을 보고 고기를 구었다.

토싯살과 새우 새송이 버섯 마늘을 구었다.

짬뽕 라면을 끓였다.

라면에는 마늘 여러쪽과 새우 두개를 넣었다.

리조트답지 않게 인덕션의 화력이 좋아서 만족했다.

평소에 요리를 잘 안하는 나는

희안하게 휴가만 오면 요리가 하고 싶더라.

엄마 미안.


집을 벗어나 호캉스를 할 땐 늘 빔 프로젝터를 챙긴다.

부피가 커서 짐이 될 법도 한데

빔을 갖고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낮선 곳에서 감상하는 영화는

그 순간을 영화롭게 만든다.


사람많은 동해 바다다.

지난 달 다녀온 제주의 바다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짙고 더 많이 소란스러웠다.

물을 무서워하지만 그래도 혹시몰라 수영복을 챙겨왔다.

발만 담글 생각으로 수영복을 입고

쏠비치에 연결된 프라이빗 비치로 갔다.

옆에 보이는 삼척 해수욕장에 사람이 더 없었는데

굳이 프라이빗 비치라고 오는게 약간 무의미해보였지만 가까웠다. 그래서 왔다.

158cm 키작은 나의 반쯤 되는 애기들도 노는 그 바다에서 겁내는 내가 우스웠다.

허리춤까지 오는 파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래도 발만 담그기로 했는데 허리까지 온거다.

모래떡이 된 샌들을 질질끌고 생쥐꼴이 된 내가 기특했다. 


성수기에 리조트엔 대부분이 아이와 함께한 가족이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왔다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셨겠지 하며 아련하다가도

막상 끌고 올 생각을 하니 말도 못할 부담이 밀려온다.

뭐하나 먹을 때도 오는 동안 길을 찾을 때도 비용을 부담할 때도 그 모든 순간이 내적 외적 갈등의 연속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정체모를 죄책감을 내려놨다.

명절 때 친척과는 와도 부모님이 가족여행을 데려온 적은 거의 없었다.

나도 어릴 때 바다보고 놀러다니는 형편이 됐었다면 물놀이가 자연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여유로운 가정을 만들어야지.


기록에 대한 강박이 있다.

뭐든 사진이나 영상, 글을 남겨야만 할 것 같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시 안 올 그 날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언젠가' 유튜브 영상 소스로 쓸 일이 있을거라는 맥시멀리즘 때문이기도 하다.

기록을 위해 그 순간 자체를 온전히 못 느낄때도 있다.

여행이라기보다 휴가이 가까운 이번 여정은 예전보다 덜 찍었다.

휴가는 일처럼 하지 말자.


아름다운 풍경은 찰나에 지나간다.

버스 창밖 풍경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누르면 이미 지나가있다. 혹은 가려져있다.

한 번 경험할 때 더 선명하게 느끼고 기억하고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녘의 어두운 버스는 낭만적이다.

6시 즈음 서울 돌아가는 버스를 타니 아주 천천히 해가 지는 하늘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밤은 생각보다 아주 천천히 왔다.

밝은 하늘에서 완전히 깜깜한 까만 밤이 되기까지 수도없이 빛이 변했다.


창밖을 보니 나도 모르는새 밤이 되는 경험만 했었는데.

천천히 어두워지는 느릿한 시간을 경험하는 사치가 왠지 맘을 편하게 만들었다.

항상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이니까.


운전을 했더라면 막힐 때마다 승질이 났을 텐데 남에 운전하는 버스를 타니 막히는건 그 나름대로 좋다.

의도적으로 어떤 인풋도 주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지 않았고 음악도 듣지 않았다. 보려했던 책도 눈이 아파 그만 두었다.

내게 들어오는 유일한 인풋은 창밖에 보이는 스크린과 엔진소리밖에 없었다.

아주 지루할 법도 한데 오랜만에 느끼는 고요가 생소하고 반가웠다.

지금은 8시인데 마치 새벽 4시쯤 혼자 깨어있는 기분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시끄럽던 속도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면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할 것같았다.

오래 묵혀둔다고 없던 의미가 생기는건 아니었는데 무튼 난 오래걸린다.

주제만 정해놓고 글을 내지 못히고 있다는 부채감만 서서히 내 숨을 조여왔다.

<처음 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책을 1년 전쯤에 보고 다시 봤다.

소재를 기반으로 쓰는 글과 주제를 기반으로 쓰는 글은 다르다는 것. 전자는 손이 먼저가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내 인생은 계속 부족한 과정인데

참 재밌었다느니 앞으론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교훈적 결말을 억지로 고집했던 것 같다.

맞지도 않는 억지 교훈을 내러놓으면 컨텐츠에 부담도 가벼워질거다.


그래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정돈이 전혀 되지 않는 시끄러운 문장들을 내려놔봤다.

9시가 되면 그냥 발행을 하고 눈을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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