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잌후 번아웃 오셨습니까
별일없이 살지만 이대로는 안될 것 같을 때, 아둥바둥하다 아무것도 못했다
별 문제 없는 삶이었다.
우여곡절은 좀 있었다해도 남들이 이름 대면 알만한 좋은 회사에 입사했고,
돈도 제법 벌고 있었으며 날 괴롭히는 못된 상사나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모 컴플렉스같은 것도 없고 사랑을 못받으며 살지도 않았다.
다만 공허할 뿐이었다.
요즘 어때
그냥 뭐 그렇지
그래 인생 다 그런거 아니냐
행복하자
알 수없는 답답함이었다.
한 숨을 쉬어야 깊이 숨을 쉰 것 같은 날들이 벌써 1년이 넘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불현듯 호흡발작이 왔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종종 내 몸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입꼬리가 씰룩대고 목근육이 움찔거리고 한쪽 눈이 감기곤 했다.
더 무서운건 이런 증상이 반복될 수록 대수롭지 않아진다는 것이었다.
변화 없이 겉으로만 평온한 이 상태는 마약같았다.
겉으로는 전혀 문제 없었다.
"불안할 필요가 없는데 쓸데없이 생각만 많아."
알 수 없는 불안과 학습된 무기력.
번아웃 이었다.
인정하기 싫은 내 번아웃 초기엔
아둥바둥 뭐든 끼적거렸다.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답지 못하게 왜 이토록 뭘 하고 싶은 생각이 안드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유투브 영상도 편집하고,
피아노도 쳐보고 브런치에 글도 좀 끄적이고,
하루에 하나씩 버리며 버림 일기라는 인스타도 열었다.
뭐든 시작했다는 마음으로 안도했고 한동안은 성취감도 있던 것 같다.
오래가진 않았다.
유튜브는 3달동안 올리지 않았고
피아노는 비싸서 그만두었으며
브런치 글은 시리즈의 프롤로그만 있을뿐이었고,
버림 일기는 어차피 버려야할 영수증따위를 버리다가 중단됐다.
한 때 불태웠던 열정의 잿덩이같은 것들을 부여잡고 비틀다가
그것들이 버티지 못하고 바스러지면
다른 조각들을 애써 찾다가 이 모든 것이 너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서
판을 몇 번이나 뒤엎었다.
일단 체력이 바치다보니 쉬고 싶었고
더딘 속도와 정체를 견디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자기 검열이 쓸데없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내가 운영하는(던)
유튜브 채널 <퇴근뒤방코노>를 살펴보자.
아무거나 일단 올리는게 목표였던 처음과 달리
어느새부턴가 유튜브를 가볍게 올리지 못하게 됐다.
보고 소비해 버리고 넘기면 그만인 시청자의 입장과 달리
그 별거 아니어 보이는 고작 몇분짜리 동영상을 만드는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과 고민이 들어갔다.
그럼 그렇게 직장 다니는 와중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찍고 편집해서 올렸으면 그만한 성취감이 드냐~ 하면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올릴 수록 이탈하는 구독자를 보니 어느샌가 진이 빠졌다.
나의 경우, 20대 마지막으로 큰맘먹고 산 차에 대한 영상이 그나마 대박이 났었는데
그로 인해 차보러온 구독자가 늘게되었다.
그런데 나는 차를 올리려한 유튜버도 아니거니와
차라는 컨텐츠로 계속 파생 컨텐츠를 올릴만큼 차에 대해 열정적이지 못했다.
방향성을 바꿔서 차튜버로 거듭나도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랑 내적 충돌이 자꾸만 발생하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건 내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올리고 싶은 컨텐츠를 올릴수록 이탈하는 구독자를 보며
뭔가 내가 들인 노력과 나에 대한 부정처럼 느껴져서 내심 속이 상했다.
내가 확실한 재주와 흥미가 정해져있었다면
더 단단한 채널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난 그냥 컨텐츠의 내용 그 자체보다 표현하는 방식에 좀 더 능한 사람이었다.
노래는 그냥 좋아할 뿐이었지 음악 유튜브를 만들고 싶던것도 아니었고
제타는 그냥 내 결핍과 로망의 실현의 상징이었을 뿐이지 차튜브를 운영하는 젊은 여자가 되고 싶던 것도 아니었다.
다음 영상은 어떤 영상을 올려야 할지
오랫동안 마음의 빚이었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빚은 커지고 회피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엔간해선 무언가 안해서는 못배기지만
깜냥이 바로 보이지 않으면 금방 접고마는
말기 조급증 환자인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 정말 번아웃이 왔구나.
영혼없이 루틴하게 회사에 출퇴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세월을 흘려보냈다.
딱히 영양가 없는 인터넷 서핑을 좀 많이 했고, 음악을 들었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벽에 쏘아봤다.
너무한가 생각이 들 땐 책을 봤고 여행을 떠났다.
이래도 되나 불안하기도 하고, 가슴 한켠에 회피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대뇌피질을 뚫고 나왔지만 넣어두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별 생각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오랜 방황을 이제 끝마칠 때가 됐다고 느끼는 때가 왔다.
내 정신력을 좀먹었던 인스타와 블라인드를 그냥 삭제해 버렸고,
금단증상이 좀 있긴 했지만 적당히 잘 버티고 있게 되었다.
내 루틴을 다시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설계 과정을 컨텐츠화하거나 시스템화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약같은 편안함을 의도적으로 깨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으며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었고,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내 이야기를 정리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조금 짜치긴 하지만,
다음 이야기는
"나의 번아웃을 깨준 5가지 마음가짐"에 대해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