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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린 Oct 19. 2019

아워바디; 누구도 대상화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몸

영화 '아워바디' 리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이론에서 자아와 몸이라는 주제가 자주 다뤄진다. 페미니즘에서는 이를 대상화된 여성성을 지적하고 여성의 몸과 언어를 새롭게 재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영화 '아워바디'는 여성의 몸과 성, 그리고 자아실현에 관한 내용이다. 성을 주제로 삼은 대다수의 작품이 남성의 성과 욕망을 위트 있게 또는 폭력의 해소로 재현하며 여성을 대상화하는데, 아워바디는 여성의 성을 어떠한 미사여구나 에로티시즘 없이 표현한다. 포르노그래피 된 여성이 아닌, 욕망의 주체인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자영의 캐릭터는 결실이 다가올 즘에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고시와 아르바이트, 인턴, 정직원 전환 기회 모두 딱 한 번의 고비만 넘기면 되는 차에 도망쳐버린다. 자영이 시험을 포기하려 하자 남자친구는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남긴 채 자영을 떠난다. 이 장면에서 등장한 두 사람의 성관계는 남성이 주도적이고 자영의 표정 또한 쾌락보다 해결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표정이다.

 이별 후에 자영은 우울감을 느끼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현주를 만난다. 카메라를 따라 천천히 훑어지는 현주의 육체는 초췌한 자영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날부로 자영의 마음속엔 욕망이 자리 잡는다. 달리기 동영상을 보며 운동을 시작하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는 현주를 스토킹하듯 따라가기도 한다.

 자영은 현주를 쫓던 중 북받쳐 오른 감정을 느끼고 흐느낀다. 달리는 것조차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삶이 괴로워서일까? 아니면 처음으로 느낀 몸의 감각에 놀라서일까?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자영의 삶도 변화한다. 달리기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친구의 권유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엄마와의 복잡한 감정도 풀어지고 나이 차가 한참 나는 동생과 가족애를 쌓고, 그야말로 자영은 '인간답게'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달리기는 서로의 인생을 상징화한 요소로 등장한다. 끝이 보이지 않던 곳에서 발버둥 치던 자영과, 마찬가지로 매번 좌절되는 꿈을 삼키던 현주는 서로의 생각과 욕망을 묻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당연하지만 답이 없는 것들이다. 달릴 때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꿈을 향해 내딛는 발자국도 마찬가지다.

 자영의 위기는 롤모델이자 구원자인 현주의 죽음과 함께 온다. 꿈을 좇아 달리던 현주는 출판 계획이 무산되며 다시 한번 좌절을 겪는다. 자영은 이를 목격하지만 차마 현주를 위로하거나 알은체 하지 않는다. 매번 자영의 신발 끈을 묶어주고 힘이 들면 자신의 뒤에 붙어 기를 빼먹으라며 당당하게 말한 현주지만, 정작 자영에게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좌절 속으로 빠져든다. 결국 현주는 죽음을 맞는다. 동호회 커뮤니티엔 현주의 소식과 함께 사고 예방법이 나란히 있다. 현주의 실패는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남겨진다.


 자영은 우울에 빠진다. 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나가지 않고 친구의 연락도 무시한다. 결국 참다못한 친구가 찾아오자 상처 주는 말까지 오간다.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자영을 다시 한 번 현주가 구원한다. 자영은 꿈에서 발가벗은 현주를 껴안고 그의 살결을 매만지다 눈을 뜬다.

 그날 이후 자영은 힘이 들 때마다 현주의 삶을 바짝 뒤따라 간다. 현주의 기록을 보며 그가 달리던 트랙을 달려보기도 하고 그와 했던 대화를 수행하며 나름대로 고비를 넘어간다. 자기 몸 자랑만 하는 어린 남자와 자기도 하고, 나이 많은 남자와 사내에서 관계를 하기도 한다. 수동적이고 주도성을 상실한 전 남자친구와의 성관계와는 달리, 이후의 관계들은 점차 주도적이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자영의 행동은 불손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오인받는다. 변화를 겪기 전 자영의 결정과 삶의 방식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비난하던 상황과 일치한다. 자영의 삶과 성은 현주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읽지 않는다. 자영에게 중요한 건 어떤 의도를 가졌고 왜 그렇게 되었는가인데, 늘 결과와 충족을 본다. 엄마는 그런 자영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채우면 되는데.


 결국 자영은 정직원 전환 면접을 포기한다. 남들에겐 고시도, 취직도 실패한 채 회피하는 이야기지만 자영에겐 욕망을 일깨우기 위한 여정이다. 자영은 현주에게 말한 자신의 판타지를 수행한다. 비싼 호텔방을 잡아 룸서비스를 시키고, 자위를 하고 잠을 잔다.

 이전 성관계 장면에서는 자영의 육체가 드러나지 않고 표정과 감정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관계 또한 관계 중심의 수동적 섹스에서 합의적이고 일회성인 섹스로, 그리고 호기심을 내포한 주도적인 섹스로 바뀌고 마지막엔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육체에 집중하는 자위행위로 변모하면서 처음으로 자영의 전신과 행위 과정을 포착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를 깨달은 자영은 비로소 대상화할 수 없는 '나의 몸'이 된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를 하면 느껴지는 쾌감을 뜻하는 말이다. 이 쾌락을 얻기까지 약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전까진 폐가 얼어붙을 것 같은 고통과 호흡곤란, 몸의 통증을 온전히 거쳐야 한다. 자영은 자신을 가지기 위해 수많은 고통과 시간을 보내야 했고, 찾아온 행운조차 일시적인 것일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현주라는 로또로 행운이 찾아왔고, 그들이 함께한 동아리 '러너스 하이'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몸과 대화하며 쾌락을 알아가는가를 깨닫는다.

 자영에게 건네지는 모든 대사는 자영의 삶이 된다. 노력한 만큼 보여주지 않고, 조금만 더 채우면 되는 것들. 자영은 그 방향을 자신의 몸으로 선택하고 이야기를 끝마친다.


#아워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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