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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린 Nov 12. 2020

"황무지" 속 분열을 통한 구원

T. S. Eliot의 시 "황무지"


  『황무지』는 그 제목에서부터 재생산의 부재를 내포한다. 엘리엇의 전작 「프루프록의 연가」에서 관계가 생산되지 않고 ‘너와 나’의 분열을 통한 소통으로 대체되었듯, 『황무지』 또한 정신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작품 속 소통은 인물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다 외부요소를 빙자한 절대자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음성은 일방적이며 의미마저 불확실하다. “붉은 바위 그늘 아래로 오라/ 그리하면 여지껏 네가 봐온 것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리라”(26-27), “서두르세요, 때가 되었습니다”(141)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화자를 재생산이 불가한 상황으로 이끈다. 공포만 남은 “한 줌의 재”(30)와 “아이를 지우려 약을 쓴 탓”(159)에 생산성을 상실한 여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희망없음을 일깨운다.

  이어 불과 물이 가지는 심판과 재생의 의미를 뒤바꾸기에 이른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절대자의 음성이 세 개의 뜻으로 분열된다. 천둥은 “다”(401) 라는 한 마디 외침을 내뱉지만 “주어라”(402), “동정하라”(412), “통제하라”(419)라는 세 뜻으로 다르게 인식된다. 절대자는 끊임없이 음성을 내뱉지만 그것이 담긴 존재와 의미는 통합되지 않으며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엘리엇은 소서스트리스(43)를 등장시켜 미신에 의지하는 사회상을 보여준다. 이 점괘에도 절대자의 음성이 존재한다. 희망, 시작을 뜻하는 “장대 세 개를 가진 남자”와 운명의 “수레바퀴”(51), 자비와 베품을 의미하는 “애꾸눈의 상인”(52)*미주1을 보여주며 구원자의 자비가 내려지고 새로운 탄생을 향해 운명이 흘러갈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이어서 “매달린 남자가 없구나.”(54-55)라는 점괘와 함께, “독감에 걸리긴 했어도 예지력을 지닌 걸로 유명한 소서스트리스”(43-44)의 상황을 보여주며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매달린 남자는 속죄, 희생, 지연을 의미하나 죽음과 연결되지 않는다. 속죄를 마치고 나면 다시 벗어나 나아갈 수 있는 존재다. 매달린 남자는 시의 서문에 등장한 쿠마에의 무녀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을 갈구할 뿐, 스스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다.

  여기서 점괘의 모순이 드러난다. 모순은 자신의 미래를 읽지 못하는 혜안과 결합한다. 절대자는 끊임없이 음성(계시)을 제시하고 구원을 암시하지만, 피구원자는 그 음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초월하지 않았다. 소서스트리스가 인간의 시선으로 음성을 풀이하고, “다”를 서로 다른 세 개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 이 맥락에서 비롯된다.

  초월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끊임없이 죽음으로 흘러가는 시와, 재생과 생산을 의미하던 상징이 변형된 것은 피구원자의 초월을 위한 단계다. “항상 당신 곁에서 함께 걷는 제 삼자는 누구인가?/ 내가 세어보면, 너와 나 단 둘뿐인데”(360-361)에서 볼 수 있듯 화자는 죽음 또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구원에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오직 수탉이 마룻대에 올라/ 꼬꼬 리코 꼬꼬 리코”(392-393)를 통해 음성소통의 시도와 절대자의 응답을 보여준다. 허나 “다”를 언어로 듣는 순간 분열이 반복된다. “그럼 내 땅이나마 정리할까?”(425)를 통해 어부왕에게 내려진 계시와 초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달린 남자인 어부왕은 불임의 땅을 정리하고 정화의 불 속에서 초월을 향한 죽음에 이를 것이다.


미주

1) The fourth card of Madame Sosostris' fortune is "the one-eyed merchant" (1. 52), a perfect description of the Six of Pentacles. The fourth card, which is placed vertically below the Significator Card, is to describe "the foundation or basis for the matter, that which has already passed into actuality and which the Significator has made his own." The merchant on the card weighs money in a pair of scales and distributes it to the needy. His act is testimony to "his own success in life as well as to his goodness of heart; Betsey B. Creekmore, The Tarot Fortune in The Waste Land, ELH Vol. 49; No. 4, 1982, pp. 914.


피드백

큰 주제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음.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텍스트 중심적 분석을 할 것

작품 내에서 점괘 자체가 작의적 요소

미주에 대해: 외부 자료를 통한 참고 불필요. 코스 패킷 내의 각주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함.


2020. 04. 06


#Thewast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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