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업주부가 된 지 딱 10년 차다.
10년이면 약 8만 7천6백 시간.
심리학 책에선 한 가지 일을 1만 시간 하면 전문가가 되고 성공한다던데, 그런가?
하긴, 어디 가서 주부라고 말하기에 부끄럽지는 않게 집안일 손이 빨라지긴 했다. 그렇지만 나를 보자면 10년이란, 성공하기 좋은 기간이 아니라 지치고 나가떨어지기 딱 좋은 기간이 아닌가 싶다.
올해에 들어서면서 나에게는 주부생활 10년 치의 권태기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전업주부로 사는 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해보이고, 헛살았다와 의미 없다로 요약되는 마음의 병.
그 핵심에 남편과의 불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마치 내 삶의 문제들이 다 남편의 탓인 듯이 사사건건 모든 게 다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부부끼리의 대화가 중요하다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나는 자주 울었다. 몇 번이나 "나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내 잠꼬대에 내가 놀라 깨어나곤 했다. 이건 아닌데, 그럼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건지 머릿속도 시야도 안갯속처럼 흐릿했다. 이런 상태를 뭐라고 하지? 화병? 우울증? 코로나 블루? 권태기?
남편은 지뢰라도 밟은 사람 같았다. 어디서 소통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는데 동거인으로부터 ‘우리는 지난 10년간 전혀 소통이 안되게 살았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놀랍기도 하겠지. 그는 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고 했다. 자기처럼 행복한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꽤 잉꼬부부였고 10년 동안 큰 싸움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밤새 말다툼을 하고 몇 일이나 냉랭하게 지내곤 했다. 싸움의 주제는 보통 감정적인 케어에 대한 요구였다.
이는 우리가 다투는 유일한 주제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것만을 가지고 평생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감정'과 '케어', 둘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남녀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는 감정과 케어의 적정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다. 예컨대 손가락을 다쳤다면 남편은 "괜찮아?" "병원 갈까?"정도면 받기에도 주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면 서운했다. 나는 달려와서 등을 쓸어주고 다친 곳을 살펴주고 대신 손가락이 되어줄 것처럼 살갑게 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하듯이. 그런 바람은 단 한 번도 이루어 진 적이 없었지만.
남편은 남이나 아내에게나 '공평'하고 나는 부부끼리는 '특별대우'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폭이 넓어서인지 서운한 건 늘 나, 서운함을 빌미로 싸움을 거는 것도 나이다. 밖에서 본다면 나는 달라고 조르고 남편은 주지 않으려 버티는 형상일 것이다. 나 혼자 짝사랑하다 보쌈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치사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얄미웠는데 점차 원망으로 불어났다.
안다, 사는데 심각하고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감정 케어 좀 안 받으면 어때서?
하지만, 그까짓 감정 케어 좀 해주면 안 됐을까?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응석받이처럼 보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소한 욕구 불만도 쌓이면 터지는 것인가보다. 그는 나의 어리광을 절대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어린애처럼 조르게 되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유난히 감정적이었고 그는 유난히 이성적이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게 서로에게 매력이었는데, 이제는 매력이 아니라 부담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줄다리기가 계속 되다보니 어느순간부터는 이 부분에서 양보를 한다는 건, 자신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거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감정 케어의 문제는 일생 일대의 문제가 되었고, 여자로서 또 아내로서의 자존심을 건 문제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