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자존감은 만병통치약인 건지 심리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기승전 자존감,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자존감, 모든 궁극적인 해결책도 자존감, 자존감에 대한 요구가 범람하는 것 같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보통은 행복했지만 미루어둔 숙제처럼 수시로 불안이 찾아왔다. 이 선택이 맞았을까?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인생이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때마다 나는 만족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일상은 평온한데 괜찮지 않을게 뭐 있어? 내가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자존감이 낮은가봐.."
내가 감정적인 케어를 요구할 때, 남편 역시 그렇게 단언했다. 자존감이 높으면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고, 외부로부터 욕구를 채우려 하지 말고 내부로부터 자존감을 높이는 연습을 하라고.
전업 주부의 자존감이란...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워졌다.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정감, 다 알겠고 그것들에서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왜 아직도 밑바닥에 있는 기분이 들지? 자존감을 높인다는 게 과연 내 노력으로 되는 게 맞는지, 자존감이란 게 정말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내면의 문제가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모든 게 내가 전업주부라서 그런 것 같아 억울했다.
정의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 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고,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은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믿는 마음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존귀해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나를 사랑해!! 를 백날 되새겨서 생겨나는 건 아마 '자존감'이 아니라 '망상' 아닐까. 실제로 자아 존중은 오직 실제 재능과 능력, 성취에만 근거할 수 있다. 부당한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응당한 존경'을 받는데 근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도 경쟁도 평가도 없는 가정이라는 환경에서 주부들이 자존감을 높이는 건 쉽지 않다. 무엇이 잣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연봉? 성과급? 고과? 휴가? 아무것도 없는데. 정체성과 자존감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존재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전업주부라는 정체성부터가 너무나 모호하다. 나는 대체 누구였을까? 집사람, 엄마,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 편리를 도와주는 사람, 종일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편히 쉬러 돌아오는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그게 정체성이라 한다면 너무 싫다. 하지만 딱히 다른 수식어가 없다. 가족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나를 아는 것처럼 구는데, 정작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자존감이라는 건 수천만원짜리 귀걸이만큼이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동시에 미치도록 갖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내가 싸운 사람은
왜 하필 남편이었을까?
자존감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남편과의 싸움을 떠올렸다. 또 감정케어를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생각했다. 일상을 탈탈 털어도 나에게는 자존감을 높일 만한 근거라는 게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재능과 능력, 성취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예전과 비슷한 형태로나마 남은 건 여자로서의 정체성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아는 거의 유일한 어른 사람인 남편의 칭찬과 인정에 필요 이상으로 매달렸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의 끝에서 결국 나는 '내 감정 좀 받아 달라'는 요구는 사실 '내 자존감을 높여줘'라는 애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걸 그가 아니라 나만 안다는 사실이었다. 자존감은 없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의존적이고 집착하는 여자가 되었나.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지겨웠다. 구차해도 너무 구차했고 구차한 만큼 아팠다. 남편으로부터 듣는 자존감이 낮다는 평가는. 그게 사실이라서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