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전업주부 졸업하겠습니다

by 김혜원

나는 누구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별일 없이 오늘을 사는 평범한 아줌마다.

결혼 10년 차, 직업은 전업주부, 가족은 평범한 남편과 두 명 의 아이.

맛있는 음식 잘 사 먹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주말엔 가족끼리 캠핑도 다닌다.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에게는 인스타그램 속 몇 장의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우울과 분노가 있다.



“아유, 여자는 사모님처럼 이렇게 남편 그늘 아래에서 예쁘게

꾸미면서 사는 게 최고예요.”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던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내게 견적서를 내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스쳐가는 말에 나는 왜 얼굴이 뜨거워지는 수치심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의 그늘 아래’가 아니라 내 가사노동 아래에서, ‘예쁘게’가 아니라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나처럼 사는 게 최고라던 그녀의 SNS를 찾아보았다. 주말에도 밤에도 일한다는 디자이너의 일상은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 꺼진 밤 잠든 아이 옆에 누워 좋아요도 누르지 않고 그 화려한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지금 나는 부러운가? 우울한가?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이는 말했다.

“네가 왜 힘이 들어.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때리기를 하니, 애들이 아프거나 속을 썩이기를 하니, 돈 걱정에 쫓기기를 하니….너 그거 솔직히 배부른 소리같이 들려, 남들이 들으면 욕해.”


그럴까.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도, 때리지도, 애들이 유난히 속을 썩이지도, 돈 걱정에 쫓겨 다니지도 않는 나는 우울하면 안 되는 걸까. 이게 남들에게 욕먹을 생각일까. 내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SNS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 것처럼 누군가는 나를 정말로 부러워할지도 모르고 심지어 질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의 삶이든 한 꺼풀만 벗겨보면 다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이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한 느낌을 그냥

모른 척 흘려보내고 싶기도 하다.


다들 그렇게 산다.

지금 이 우울도 다 지나갈 것이다. 첫째 출산의 고통을 까맣게 잊고 또 둘째를 낳았던 나처럼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망각하도록 태어났다. 지금의 이 감정도 지나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걸로 잊히고 말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데 일희일비해서 무엇 하나? 다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거지. 그럼에도 나는 시절의 일희일비를 기록했다. 망각하기 위해서 적었고 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남겨두었다. 지금은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면 “다 그런 거야, 사람은 아래를 보고 사는 게 행복한 거야, 다 지나가는 일이야”같이 좀 별로인 말을 꽤나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모든 괴로움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라며 증발시킬 뻔한 마음을 굳이 내어놓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있다.


이 글이 부디 가닿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가정의 안온한 생활을 유지하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주부인 사람.

집 안에서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리는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

알려는 마음조차 욕심인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모른 척하려 애써온 사람.

그 사람을 편들어주기로 했다.

자기 인생인데 욕심을 좀 부리면 어떠냐고, 아니 그게 어떻게 욕심일 수 있냐고, 너무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다.


당신 편을 들어주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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