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 답일까?

취미와 창업이 이어지던 경험으로부터

by 김혜원


전업주부로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화두였지만 전업주부 졸업을 결심하고 나서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전업주부 졸업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독립성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은 일인데, 경제적으로 의미 있어야 하고 정신적으로 생산적인 일이어야 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나의 조건들-시간은 제한적이고 체력은 바닥이고 큰돈은 없다-에 맞아야 했다.


그래서 취업, 재테크, 공부는 하나씩 제외되었고 결국 남는 대안은 창업이었다. 이게 딱히 아하! 하는 발견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사업자등록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멍가게이지만 사업이란 것을 해 본 경험이 여러번 있다는 말이다.

당시에는 "심심해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아무리 전업주부라도 아이들 키우면서 사는 일상이 심심했을 리가 없다. 나는 언제나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거고, 무의식적으로 계속 애를 써 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경제적 자립이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사실상 하던 일을 계속 하면 되는건가, 싶기도 하다. 아니, 하던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본격적으로 한다고 해야겠다.




새댁 시절 내 취미는 허브로 식초를 만들고 과일청을 담구는 거였다. 취미 삼아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선물도 많이 했고, 사고 싶다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부정기적으로 글을 올려 자몽청과 레몬청을 팔았는데, 나름대로 장사가 잘 됐다.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좋았고, 육아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것도 즐거웠다. 내가 산후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그 덕분이었다.

일을 제대로 한 번 해볼까 하던 차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누군가가 우리를 신고한 것이다. 경찰서에서 들으니 식품은 집에서 만들어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사업장이 있어야 했다) 당연히 몰랐다. 그럼 지역 카페에서 아줌마들이 반찬 나눔 하고 소소하게 판매하는 것들은요? 그것도 다 불법이라고 했다. 사업이라기보단 취미라고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신고를 당하고 나니 겁이 났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자료를 애써 모아 신고까지나 한 걸 보면 그만큼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반증 같았다. 우리 청은 가락시장에서 공수한 정말 최고의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했고, 맛도 진짜 끝내줬다. 기소유예로 소동이 끝난 후 나는 바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한 번은 캔들에 꽂혔다. 파라핀보다 좋다는 소이캔들이 나왔는데 그게 비쌌다. 만들어서 쓰자 하다보니 또 주변에서 팔라는 사람들이 생겨난거다. 그래서 방산시장을 다니면서 재료들을 공수하고 되는대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동네 마켓도 나가보고 블로그를 통해 캔들을 팔았는데, 그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단순하고 명확한 작업이 마음에 가져다 주는 위안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둘째를 가졌다. 입덧이 첫째 때보다도 심했는데 특히, 왁스나 오일 냄새를 맡으면 토를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첫째 임신하고는 회사를 그만두더니,,, 둘째 임신하고서는 캔들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가, 작년 연말이었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은 주얼리를 팔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나서 바로 저지르는 게 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은 제품을 팔면서 공부를 해서 나중에는 금을 취급하겠다는 큰 포부가 하루만에 세워졌다. 희안하게 그 동안은 늘 취미생활로 치부하던 남편이 이번엔 웬일인지 응원해주었다. 사진 잘 찍으라고 조명기구까지 사주고... 시장에서 물건 떼 오고 사진 찍어 올리고 상세페이지 쓰는 일을 혼자서 다 했다. 아이 등교길에 같이 나가서 시장에 갔다가 하교 전에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힘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두 달도 채 못되어서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코로나엔 정말 장사가 없다. 겨우 이거 하다가 애들한테 전염병이라도 옮기면 어쩌나 걱정하며 겨우 유지만 하다가 학교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던 시점부터 사실상 지금은 또 폐업 상태이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실패 스토리를 구구절절 적어본 이유는, 이게 현실적인 전업주부의 창업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켓컬리 같은 창업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마켓 분석을 잘못해서, 자금이 부족해서, 경쟁사의 압력으로, 또는 입덧 때문에, 전염병의 확산으로, 별별 이유로 대부분의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알려지지 않은 이름의 수많은 시도를 해 본 사람들이 어느날 마켓컬리를, 배달의 민족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나의 실패 원인을 찾자면, 외부적인 요인도 컸지만, 솔직히 절박함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취미가 창업으로 연결되었기에 경계가 모호하기도 했고, 생업이 아니기에 포기가 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생활비를 아껴 모으는 돈 말고, 내가 번 돈이 필요하다. '내가 번 돈'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건 경제적인 여유 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 정말 즐거웠다.

남들이 보기엔 시시한 일일지 몰라도, 나는 그 안에서 사명감과 성취감과, 호기심과 유능감을 느꼈다.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으로 물건을 사고 택배를 보내는 것마저 나는 좋았다. 아마 전업주부가 아니고서야 이런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여러가지 기대를 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꿈꾸지만 일하는 아내, 일하는 엄마가 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들이 펼쳐질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워킹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슬픈 슈퍼우먼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것보다 겁나는 건, 예전처럼 전업주부와 현모양처에 목숨 걸면서 혼자 울고 웃으면서 지내는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취미가 일이 되어온 경험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창업의 실마리를 잡아보고 있다. 어쩌면 창업이 답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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