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시간

주부 우울에 대해서

by 김혜원
하루키는 매일 20매의 원고를 아주 담담하게 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하는 하루키의 모습에 내 하루를 겹쳐본다. 하루키와 나는 닮았고 또 다르다. 하루키가 하루에 20매씩 담담하게 원고를 쓰는 동안 나 역시 담담하게 아일랜드 식탁을 치우고 밥을 짓는다. 반년이 지난 하루키에게는 3600매의 원고 뭉치가 남고 내게는 여전히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주방이 있다.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주부들이 쓴, 주부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쓴 글인가? 생각할 만큼 나의 마음을 정확히 묘사하는 글귀를 만날 때가 있다. 그녀들이 나의 것과 거의 같은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확인하곤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고립감과 두려움에 대한 글이 넘치도록 많다는 것을 알고 나면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나는 가라앉은 마음과 갑작스레 폭발하는 분노로부터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는데 위로와 공감만으로는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주부 우울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니, 많은 연구에서 주부 우울은 주부 피로로 바뀌어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부가 힘든 건 집안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집 밖의 사람들에게는 집안일의 자질구레함, 산만함, 모래성 쌓기 같은 허무함까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몰랐다. 집안일의 구조적인 문제에는 공감하지만, 정작 제일 민감한 부분은 결코 건드리지 않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논문 몇 편을 읽고 나니 인간의 한 가지 보편적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주부가 우울하다는 것만큼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도 없는 거로군.'


이는 가족들에게 느꼈던 이질감과도 비슷했다. 내 마음이 전쟁터처럼 시끄럽고 잔인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마치 나의 마음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나 하나만 참고 조용히 있으면 가정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야말로 홈, 스위트 홈이랄까.. 나는 나만 아는 이 온도차를 자조 섞인 마음으로 관망하곤 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언 강의 살얼음 같은 평화일 뿐이었다. 가족들이 집에서 매일 당연히 누리는 돌봄과 휴식을 나도 원하면 너무나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곧 집이었고, 가족들에게 집이란 밖에서 돌아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나는 마치 동네의 골칫거리 싸움닭 꼬마가 된 느낌이었다. 얇고 매끄러운 얼음에 돌을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 생각하면서 나는 따뜻한 밥과, 깨끗한 이부자리와, 반짝이는 세면대와, 개어놓은 새 옷을 준비하곤 했다.


그때에 나는 주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수년 전 산후우울을 겪었을 때와는 결이 아주 달랐다. 그때에는 ‘망했다’ 느낌의 적극적인 우울이었다면 이번 우울은 망할 것도 흥할 것도 없다는 잔잔한 일상 같은 병증이었다. 여전히 아무 때나 눈물이 주책맞게 흐르고 매일 밤 도망치듯이 잠에 빠져들긴 했지만, 일상도 마음도 놀랍도록 잔잔했던 것이다.


하루는 동네 미용실에서 등 뒤로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친정집이 일본이거든요. 근데 엄마가 아파요.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못 가보다가 이번에 큰맘 먹고 갔어요. 한국에서 일본에서 자가격리하고, 일주일 지내고 하다 보니까 총 5주 동안 집에서 나와 있었던 거예요. 나는 그동안 남편이며 아이들이며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을 했게요? 5주면 너무 길잖아요..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까 아무 일도 없었대요. 나 없어도 너무너무 편하게 잘 지내고 있었더라고요.”

그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집의 숙명은 빈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 안을 따뜻하게 데우고 꾸미는 것은 옵션이지만, 본질적으로 집은 사람을 담기 위해서 비어있는, 단절되어 있는 공간인 것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나의 시간 또한 그런 것인지 몰랐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여전히 매일 빨래를 해야 하고 뒤돌아서기 무섭게 치울 것들이 생기고 세끼 밥을 해야 하는 일상이지만 머지않아 나의 시간은 텅 비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작대던 그때가 차라리 좋았다고 말할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매일 큰 아일랜드 식탁을 닦는 내가… 미용실에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염소는 과거와 미래와 결부한 현재를 15분 정도 인식하며, 개는 인식은 30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시간 인식은... 무한하다. 세상과 별개로 자신만의 미래를 계획하면서 현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아이러니한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행복도는 짐승만도 못하다.

현재만을 살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을 갖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는 개나 고양이는, 분명히 인간보다 행복해 보인다. 내가 진심으로 개와 고양이를 부러워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아무한테나 아무 말이나 마구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고, 약이라도 받아먹으면 낫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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