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만나자_죽순 구이

by 김혜원



호감이 있지만 내 손으로 사서 요리해 본 적이 없는 식재료 중에 하나는 죽순이다. 짬뽕을 먹을 때 독특한 식감을 내던 죽순, 어리고 연한 대나무의 싹, 봄에 아주 잠깐 동안만 나온다는 귀한 재료. 어딘가 이국적인 데다 손질이 복잡할 것 같은 죽순.


얼마 전에 간 이마트에서 다 손질해서 진공 포장된 죽순을 보았다. 대형마트는 일 년에 손꼽을 만큼만 가게 되는데, 역시 큰 마트라 별게 다 있네, 신기한 마음으로 처음 사본 죽순이었다.


죽순에는 특별한 맛과 향은 없지만 그런 이유로 이런저런 요리에 추임새로 넣기에 그만이었다. 그 식감은 어디에 넣어도 풍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그중에서도 기름 두른 팬에 소금 한 꼬집과 구워서 잣가루를 뿌린 죽순 구이가, 별미였다. 슴슴하고 은은한 것이 '건강함'이 음식으로 태어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아이가 맛있다며 죽순을 잘 먹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아할 맛은 아닌데 식감이 좋다고 했다. "우리 아들 미식가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큰아들로 말하자면 입이 짧기로는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때 들었던 수십 가지의 위로와 조언 중에 제일 좋았던 건 이 말이었다. "미식가로 태어난 아이들이 입이 짧지요. 입 짧은 아이들은 미래의 미식가들로, 누구보다도 입맛이 예민하고 고급스럽기 때문이니 절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잘 안 먹는 아이를 두어 타들어가는 마음에 그 말은 참 위로가 되었더랬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보니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타고나게 감각이 예민한 아이라서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민함에 있어 미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감각이 예민하다는 건, 은 자극을 남들보다 더 크고 강렬하게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건 볼륨이 큰 스피커 앞의 자리이고 울퉁불퉁한 자갈길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감각의 예민함은 동전 같아서 그 뒷면은 이렇다. 남들에겐 본능인 감각 촉수가 없어서 관계에서 쉽게 어리둥절하거나 불안해진다. 어나온 부분과 함몰된 부분이 요철로 아귀가 맞는다. 그러니까 언제나 누구나 총량은 다 같 것 아닐까.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말을 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주눅 든 너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어. 내용이 무엇이건 아이들의 말은 주먹이 되어 너를 때리지. 나는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은 아님을 알면서도 달려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서운 표정으로, 겁을 주어 아이들 무리를 흐트러뜨리기에 효과적인 어른의 얼굴을 쓰고 너에게로 돌진했어.


"엄마 내일 또 해주세요." 아이의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든다. 아이의 입가에 묻은 잣가루의 천진함에 기억과 장면의 잔상은 먼지처럼 가볍게 흩어진다. 문득 아이가 죽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얼마나 큰 어른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나는 입을 가늘게 늘이며 웃는다. 이제 나의 냉동실엔 언제나 죽순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나는 봄을 불러올 수는 없지만 언제든 봄의 죽순을 꺼내어 구워줄 수는 있. 이가 그렇듯이, 마가 된 괴로움과 즐거움도 죽순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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