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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14. 2021

자기가 뭘 입고 사는지 모르는 게 아들

뒤돌아 포효하는 아침


오늘 아침의 일이다.

"어? 오늘 서예 하는데"


함께 등교하는 옆집 여자 아이가 말했다.

아차차,,, 오늘 큰아들은 하얀색 맨투맨을 입고 있다.

잠깐만 기다려 갈아입자,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데님 셔츠를 하나 들고 나왔다.


"안에 너 반팔 티 입었어, 속옷 아니니까 후다닥 벗고 갈아입자."

싫다고 한다. 여자아이 앞이라 벗는 게 싫은 건가.  

".... 그럼 안에 가서 빨리"

싫다고 한다. 그냥 그 셔츠 겹쳐서 입겠다고 한다.

"그럼 낮에 너무 더울 거야, 너 지금 옷도 한낮에는 더울 텐데"

싫다고 한다. 싫어, 싫어, 싫다고.


"그럴 시간에 빨리 갈아입는 게 나을 거야~"라고

보다 못한 옆집 언니가 말하지만

대답은 하나뿐이다, 싫어, 그냥 겹쳐 입을래.

억지로 옷을 벗겨보려 해도 힘으로는 소용없다.  

일 분이 바쁜 등교시간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다.



반팔티에 맨투맨, 그 위에 데님 셔츠...

결국 옷을 세 겹이나 입고 나가는 아이를 보면서  

"쟤는 더워도 안 벗는단 말이야~~" 하고

나는 울상이 되고 만다.

더워도 안 벗고 추워도 안 입는다 뿐인가,

어제는 등굣길에 보니 한쪽 양말이 바지를 다 먹었는데,

하굣길에도 그대로였다.

오늘은 땀범벅이 되어서 돌아오겠지....


옆집 언니의 얼굴에

아이가 알아서 할 걸, 엄마도 참 유난하다는 표정이 스친다.


옆집 아이는 늘 반팔이나 긴팔 면 티셔츠에, 간절기용 점퍼를 걸치고 있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아이인 게 분명하다.

아니, 애초에 입을 옷을 스스로 골라 입었겠지...




나의 아들은 혼자서 옷을 입고 벗는 데에 아주 서투르다.

혼자서 입게 두면

바지든 윗도리든 70프로의 확률로 뒤로 입고

겉옷 위에 겉옷을 입는 일은 흔하다.

계절에 맞는 옷을 고르지 못한다.

그리고 한 번 입은 옷은 벗기 싫어한다.

위 아래 100% 였던 어느 날...


"자꾸 도와주니까 아이가 더 의존적이 되는 거야

엄마가 초연해야지, 아이가 스스로 배울 수 있게 시간을 줘야지."


이런 말을, 나도 언젠가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절대 할 수 없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의 당사자가 되면 그렇다.


일반적으로는 '귀찮거나 게을러서'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어떤 아이는 정말로 몰라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옷을 찾아 입기도 그렇다.   

명확한 규칙을 찾을 수 없는 일을 수행하는 게 너무 힘들고,

힘드니까 자신이 없고,

그래서 포기하고 마는 아이도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아스퍼거 아이들이 겪는 일상의 어려움이다.

그리고 사실상 엄마, 양육자의 어려움이다.  

엄마라는 사람들은 좀처럼 포기를 모르기 때문일 거다.


언젠간 될 거라는 믿음으로

어릴 때엔 최대한 자세히 반복해서 가르쳐주었지만

아이 머리가 크면서 깨닫는 건,

결국은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스스로 계절에 맞는 옷을 제대로 잘 갖춰 입는 일은, 영영 없을 수도 있다.

어른이 된 저 아이는, 높은 확률로,

미드 빅뱅이론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입을 것이다.

아니면 옷장에 검은 폴라티와 청바지만 열 벌씩 쟁여놓고 그냥 매일 꺼내어 입겠지.

엄마가 애를 쓰건 말건  

결국 내가 상관할 수 없는 아들의 삶이라고

아들은 오늘 아침 분명히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싫다잖아. 똥고집이가.

옷에 먹물이 튀건 말건 내가 골라 입혔지만 내 탓 아니야. 아니 애초에 옷 입을 때 왜 그걸 말을 안 해?

더워 죽든 말든 나도 몰라.

싫다잖아.

그래, 보지를 말자, 애틋하지를 말자, 관심을 두지 말자.

근데 그게 되냐고.




여러 가지 감정에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만큼 뭔가 분하고 속이 상한다.

위액이 분수처럼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것 같다.

바야흐로 포기를 배워야 할 때이다.

퍽이나 포기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하늘도 높고......


오늘도 나에게 아이를 키우는 건

황홀함과 속 터짐의 중간 그 어디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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