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큰아이와 외출을 준비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만약에 이따가 불이득 하게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나 엄마 폰으로 루미큐브(보드게임) 시켜주세요."
"그래 알았어. 그런데...... 불이득이 뭐야?(곰곰) 혹시.. '부득이하게' 아니야...?"
불이득이라니.. 불이득이라니!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더니 아들은 엄마가 왜 웃는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다. 문맥상 그것도 맞다, 불이득 하기도 하겠다 싶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났다.
어린이라서 할 수 있는 엉뚱한 말들이 있다. 어른이 되면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을 기발하고 진지한 생각의 조각들, 허를 찌르게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단어들이란.
한 번은 막내딸이 다급하게 "엄마 서비스 주세요!"라고 외쳤다. 무슨 서비스를 달라는 거냐 했더니 "여기 모기 물렸어요~~~ 시원한 거 바르는 거~서비스~~" 알고 보니 서버쿨이었다.
또 어느 날엔 '엄마 깍두기'를 보자 해서 알고 보니 '엄마 까투리'였고, 신나게 까불고는 '농담이야!' 해야 할 자리에서 '용담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용담이 뭔데? 하니 장난 같은 거라고 했다. 바다에 가서는 따개비를 보고 반가워 하며 "여기 꽈배기가 있네"라고도 했다.
이 친구에게는 매일 자기 전에 쓰는 내일의 계획표가 있는데, 한 날은 '라푼젤 시리지 그리기'라고 적혀 있었다. 시리지가 뭐냐 물으니까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건 '오늘 그리던걸 이어서 내일 그리고 또 그리고 계속 그리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시리즈’를 말하는 것 같다. 이 막내딸은 한동안 오빠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외워 부르고 다닐 때 귀담아듣다가 후렴구를 열심히 따라 부르곤 했다. “… 옆집은 흐른다아~!” 라고…
나는 아이들이 하는 귀여운 말실수들을 알뜰하게 다 모아서 저장해 놓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엔, 도대체를 자꾸만 대도체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얘기를 여러 번 하면서 그때마다 웃으셨는데, 나도 그런 단어들을 많이 모아놓고 오랫동안 꺼내어보면서 함께 웃고 싶다. 아이들도 어렸을 땐 ‘그게 뭐가 웃겨?’라고 심드렁하겠지만 어느 순간 한 스무 번쯤 들을 만큼 나이 들고 나면 그게 뭐가 웃긴지 알게 되겠지 나처럼....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역사란 게 별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라는 건 이렇게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그러나 오랫동안 기억에 애써 담아두는 단어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