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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19. 2022

자긴 방송글보다 책을 쓰는 게 맞겠는데

출간일기


옛날 옛적 막내작가였을 때 가지고 다니던 출입증을 꺼내봤다.

내 방송작가 첫 시작점은 여의도의 한 프로덕션이었고 첫 프로그램은 M사 아침 생방송이었다. 밤을 새고 방송국 들어가는 아침, 이 출입증을 달면 가슴이 터질듯이 벅찼었다. 이걸 아직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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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계속 3사 본사에 있다보니 직원들마냥 꽤 직장인스러운 목걸이 출입증도 생기고 폼나는 방송국 명함도 생겼지만 여전히 나는 이 출입증의 설렘이 가장 강렬하다. 그래서 자주 여는 서랍 잘 보이는 곳에 이걸 늘 올려뒀었다. 새로 시작하는 그 기분 그 느낌이 여기에 다 담겨있어서..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읽혀질까 걱정도 되지만 어설픈 첫 시작이 늘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아니까 그걸로 나를 다독인다. 곧 따끈한 책을 받으면 아마 이 출입증 옆에 놓아두지 않을까 싶다.



의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막내로 있을 때 피디는 내가 써온 원고를 보고 그랬다.

"이 글은 방송 글이 아니고 촛불 아래서 읽어야 하는 시나 소설 같네. 글은 좋으니까 섭섭하게 듣지 말고 진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다시 쓰겠습니다" 하고 빠르게 돌아 나왔다.

그러곤 그런 말 들은 게 너무 속이 상하고 창피해서 집에 와서 이불킥하면서 울었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날에도 같이 일하던 피디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자긴 방송 글보단 책을 쓰는 게 맞겠는데"

내 글이 그렇게 구리다는 거야 뭐야 생각하던 중에 그 분이 메일을 보냈다. 본인이 쓴 소설인데 좀 고쳐 달라고 하면서... 어랏?


당시에는 내가 들었던 그 말들에 자존심이 콱 상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 생각해보니 그 말들이 이상하게 힘이 된다. 나를 까려고? 했던 말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응원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아님 말고.

그래서 돌고 돌아오느라 늦었지만 이제야 책 한권 쓰기는 썼다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진다.




글에도 종류가 있고 어디에 어떻게 쓰는 글인지에 따라서 색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나는 글쓰는 일로 돈을 벌 때엔 원고도 쓰고 홍보글도 쓰고 판매글도 쓰고 공문서도 쓰고 안내문도 쓰고 입시 에세이도 썼다. 결혼하고 일을 그만 두고서는 돈은 안받지만 블로그 글도 쓰고 까페 글도 쓰고 브런치 글도 썼다.

어떤 글은 폼나고 어떤 글은 음지의 것이고 어떤 글은 칭찬받고 어떤 글은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글은 그냥 다 글인 것 같다. 여기서 까인다고 끝이 아니고 여기서 별로인 글이 저기에서는 빛날 수도 있고. 어디에서 무엇을 써야겠다는 고집, 선입견, 오기 같은 것은 내려놔도 될 것 같다.


이건 그냥... 방송작가로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끝이라고 동동대던 한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쓰는 하찮은 이런 글에 무슨 의미가 있나 우울했던 한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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