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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Sep 01. 2022

다가오는 말, 듣는 사람   

은유, <다가오는 말들>


책의 날개에 적소개글은 이렇다. "'편견 많던 사람'은유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려 애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가가 다가오는 타인의  말들을 만나고 사유하면서 생각을 확장시켜나가는 기록이다. 그러나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말들은 좀처럼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중 대부분은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말하던 대로 말하고 만다. 나와 다른 타인의 말은 대부분 튕겨 나가거나 굴절되고 혹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걸 요즘 말로는 이렇게 부르더라. 알고리즘.

유난한 노력 없이 우리들의 삶은 개구리화 되기 십상이다. 슷한 언어와, 나와 비슷한 생각만을 솎아놓은 작은 우물 안에서 각자 사는 것이다. 개골개골.


그러므로 '다가오는 말들' 이 함축하고 있는 건 말들을 듣는 누군가의 귀다. 아마도 사람의 귀.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말에 누군가는 귀를 연다. <다가오는 말들>은 마음을 쓰고 시간을 들여 타인을 듣고 생각하고 기록한 한 권의 책이다. 타인을 향한 사려 깊은 배려는 점점 더 희소하고 귀해진다. 그런 시선이 고플 때 이 책을 열어 귀퉁이가 접힌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그러면 마음의 허기가 달래질 처럼.  타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경험은 늘 흐뭇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조곤조곤한 이야 절반 정도는 말에 깃든 반짝이는 것의 발견이되, 절반 정도는 말이 품은 사회적 개인적 편견에 대한 발견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그들은 자서전으로 인터뷰로 자기 말을 퍼뜨리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 및 유통된다." (125p)


"좀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는 변호사, 네 병은 내가 안다고 말하는 의사.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타인의 사정을 헤어리기 위해 진득한 노력을 기울이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하는 재주만 능하다." (46p)


우리가 주로 듣는 말들은 강자의 말들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크고 질문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노력해서 그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하느냐고 묻고, 지하방에서 물난리로 죽은 가족을 두고 왜 대피를 제때에 못했는지를 묻는다. 상대의 고통을 목격해도 자신의 합리성 안에서 너는 고통받을 '이유'또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버린다. 그런 말들에 못 견디게 피로감을 느끼지만 그런 말들일수록 더욱 빠르게 유통되고 소비된다. 그걸 요즘 말로는 이렇게 부르더라. 조회 수가 곧 돈.


그렇다면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말, 애써 다가가야 하는 말들은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답은 책의 막바지인 332페이지에서 찾아냈다. 작가는 <웅크린 말들>이라는 책의 문장을 인용했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478)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여러 책 리스트와 함께 <다가오는 말들>은 익숙하고도 낯선 말들을 내 귓가에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저절로는 다가오지 않는 말들. 말해지지 않은 말들. 귀를 한껏 열고 들어야 들리는 말들을 천천히 생각하면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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