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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Sep 08. 2022

위대한 엄마 작가들을 위하여

니콜 굴로타,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나는 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일단 작가라는 이름을 달 직업을 구했다. 방송작가로 방송글을 썼고 때로는 의 글을 대신 썼다. 여전히 이야기 쓰고 싶었지만 일을 쉬는 시간엔 자꾸만 고 싶었기 때문에 쓰지 못했다. 출산을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나는 은근한 기대를 했다. 일을 쉬면 이제야말로 '진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뭣도 모를 때의 이야기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경험한 총천연색 사회생활에 대한 묘한 감상이 뒤죽박죽 섞였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참이었기도 했다. 그즈음 내가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던 결혼에 대한 글은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때 난생처음 출간 제의를 받았는데 왠지 부끄러워서 거절했다. 만약 그때 내가 첫 책을 냈다면 내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해도 쓰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 나는 아이를 (두 번이나) 낳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혀진 저자의 상황은 나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면서 아이를 낳은 여성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내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는데, 기저귀 갈고 육아 책 읽고 아이의 배변 기록을 스마트폰 앱에 입력하는 이런 모든 것을 하면서 계속 책을 쓸 수 있을지 두려워졌다. 고단한 삶은 그저 이어지고 또 이어질 뿐이었다.

이후 내 일과는 더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시간 단위로 측정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은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그 두려움이 나를 늘 괴롭힌 것은 아니었으나, 내 어딘가에 숨어있는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가족과의 생활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지만, 나의 창작력은 흡사 임신했을 때 위축되었던 여러 장기들처럼 지속적인 불편함과 부딪히면서 무너져가는 것 같았다." (8p)

 

두려움. 예전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은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와 적응하기 위해 그렇게나 하루 종일 울어재끼면서 용을 쓰는 것처럼 엄마로 다시 태어난 여자도 그만큼이나 처음 겪는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작고 무력한 새 생명을 전적으로 돌봐야 하니 자기 자신에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럴 때에 글쓰기란 얼마나 사치스럽게 보이는지 모른다. 사실 글쓰기는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쓰는 이에게 큰 위안이 되지만 처음 엄마가 되고 처음 아기를 돌보는 그 순간 모든 게 뒤집어진 삶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그러니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생각하자면 결혼을, 출산은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란 명확한 결론이 난다. 그것으로 인해 나는 쓸 수 있는 시간과 체력과 집중력을 거의 잃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어도 삶이 변하지 않는 듯한 남편을 질투하는 마음이 삐죽 올라오기로 했다.


하지만 또 한편 나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깊어진 나를 인식다.


엄마가 된다는 건 같은 세상을 다른 캐릭터 버전으로 사는 것과 같았다. 빠르게 사느라 스쳐 지나갔던 작고 느린 것들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눈에 보였다. 아이를 통해, 완전히 잊고 있었던 갓난아이의 삶과 어린이의 삶을 다시 살면서 삶의 연속성을 깨달았다.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한편 이곳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도 날카롭게 보였다. 어린이의 인권이나 여성의 권리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새로 가지게 되는 엄마들을 많이 본다. 그것은 분명한 성장이고 진화이다. 그렇게 보자면, (몸을 쪼개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고 시간이 없을 뿐,) 작가로서 정신적으로 이보다 더 극적인 업그레이드는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엄마 작가의 삶이 다른 작가의 삶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삶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삶이란 게 그렇만 엄마들은 엄마라서 더 그렇다. (일단 삼시 세끼 문제를 어떻게 좀 해야 한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오전 내내 글을 쓰고, 저녁에는 쉰다는 하루키적인 글쓰기는 엄마 작가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보호자이자 양육자로 n인분의 삶을 살고 매 순간 '엄마의 손길'을 요구하는 비합리성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참 오묘하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든 경험은 삶의 비료가 된다는 것 말이다. 그 비합리성에 대한 괴로움 어코 이야기가 되어 쓰였고 나는 그 이야기로 드디어 첫 출간을 했다.

 

글을 쓰는 수고를 통해 나는 나의 현재를 미워하지 않고 삶의 행복에 집중할 수가 있다. 물론 쓰지 않아도 그러한 부럽고도 훌륭한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라는 무기가 필요한 전사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글을 썼으면,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인데 니콜 굴로타의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도 그렇다.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 작가들에게 이보다 더 실용적이고 따뜻한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 우리들에게 이 책의 조언들은 무척이나 유용하고 현실적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내게도 그랬듯이 당신에게도 리듬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이루는 여러 자아를 분리할 필요도 없으며,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다른 즐거움이나 책임을 위한 욕망과 당신의 창작욕을 애써 화해시킬 필요도 없다. 스스로 긴장한 채 울타리 위에 서서 휘청거리는 것 같은 느낌의 균형은 당신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에 뒤섞여버리기를 권한다. 글쓰기, 가족, 일 등은 각기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심지어 서로를 향상해주는 삶의 일부다." (14p)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란 삶을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계절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씨를 뿌리고, 햇볕을 맞고, 수확을 하고, 휴식을 하는 4계절이 있듯이 글 쓰는 여자의 삶에도 절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책은 10개의 계절을 소개한다. 시작, 의심, 기억, 불만, 돌봄, 양육, 문턱, 눈뜸, 피정, 완성. 누구라도 어느 계절인가는 지나고 있고, 이것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마다 옮겨 다니는 일종의 구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나는 삶의 순간순간 이 지침서를 보면서 이 구간을 지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떠올리게 된다. 내려놓기 일 때도 있고 내달리기 일 때도 있고 그저 영양 보충일 때도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건 나에게는 효과적이었다. 엄마 작가인 나에게는 이 책이 따뜻한 친구이자 조언자이자 동료이자 뮤즈인 것이다.  


이 책은 글쓰는 엄마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자주 회의가 들고, 주의가 산만해지고, 예상치 못한 방해에 쓰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계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럴 때에는 삶에 더 집중하면 그만이다. 몸을 잠시 낮추고 유연하게 속도를 조절해도 상관없다. 글을 쓰는 한 여전히 우리는 작가이고, 삶을 계속 사는 한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절은 돌고 돈다.


삶과 뒤섞이고, 유연하고, 온통 마음을 드러내고, 가끔은 품위가 있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 엄마이고 작가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니콜 굴로타도 아는 걸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엄마 작가로 사는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만큼, 아니 그것 이상으로 정말로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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