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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Sep 29. 2022

엘리자베스 여왕을 존경하세요

왜요?


얼마 전 영국 여왕의 장례식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떤 지인은 단체 문자를 뿌렸다. 나이가 꽤 지긋한 그는 문자로 “그렇게 웅장한 장례식은 처음 본다”며 “그것만 보아도 여왕이 얼마나 생전에 고귀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는지 알겠다"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내 삶엔 여왕의 존재감이 없어서 별 감흥 없이 지나치던 중이었는데, 그런 나도 그 문자엔 잠시 멈춰 각을 해보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떤 의미일까? 대영제국의 전성기 시절과 2차 대전 이후 몰락하는 영국을 모두 살아낸 여왕인 엘리자베스는 역사적인 인물임은 분명하다. 권력은 없지만 권위는 살아있는, 몰락한 대영제국의 현신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여왕의 의미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사실 대영제국의 찬란한 역사란 반대편에서 보면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역사에 다름없다. 여왕의 장례식이 아무리 웅장하고 왕족이라는 이름이 아무리 고결해 보여도, 대영제국이 만든 제국주의의 역사는 그만큼 고결하지 않고 전 세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으니 말이다.


대영제국의 그림자는 영국이 식민 지배했던 아프리카 국가들과 직접 통치했던 인도, 독립을 추구해온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까지 뻗어있으며 중국과 미얀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종차별의 본산인 노예무역, 청과의 아편전쟁, 북아일랜드 분쟁, 아일랜드 대기근,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 축출 및 팔레비 왕조 지원, 이-팔 분쟁의 계기가 된 사이크스-피코 협정 및 맥마흔 선언, 뱅골 대기근, 쿠르드족 학살, 보어 군과의 전쟁 당시 보어군 집단 수용 및 탄압,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를 이용해 민족 분쟁을 만든 것 등 전부 나열하기도 어렵다. 대영제국의 특기인 ‘손을 더럽히지 않는 교묘한 통치술’은 현대 영국에 와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둔갑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에 많은 정치 지도자가 조의를 표한 것과 별개로, 아픔을 간직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분노한 이유다. (출처_저널리즘)


지구엔 안타깝게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가 너무 많다. 한국인으로 살다 보니 과거사를 부인하고 조롱하는 뻔뻔함에는 아주 이골이 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 대해서도 가자미 눈을 뜨고 보게 되는 게 나의 정서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에는 대영박물관에 대한 영상을 봤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언젠가 '이집트 미라는 모두 이집트가 아닌 영국에 있다'는 농담을 들은 적 있는데, 실제로 그 규모가 엄청난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채찍을 휘두르며 신나게 쓸어 담은 전 세계 문화재의 종류와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한 때 가보고 싶어 안달하던, 위대한 박물관은 사실상 약탈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고, <가디언>은 대영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도난 물품 보관소’라고 비난한 바 있다. 언젠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가게 된다면, 나는 무턱대고 감탄하는 대신 기억하고 싶어졌다. 인디애나 존스에서 용맹한 영웅으로 묘사된 주인공은 피해자에겐 문명의 파괴자이고 도둑이란 것을. 여전히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 등에서 지속적으로 수탈한 유물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영박물관은 귀를 막고 있으며, 그곳에는 과거 일본이 멋대로 팔아넘긴 신라시대의 유물 몇 점도 있다는 것을. 그게 우리가 감탄하는 화려한 대영박물관의 뒷면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단체 문자를 생각했다.

문자를 보낸 그는 대영제국과 영국 왕권과 제국주의에 대한 이러저러한 복잡한 사정을 알리 없었다. 안다면 한 시대를 상징하던 여왕의 서거에 대해 감상 정도는 가질 수 있어도, 그런 단체 문자로 무지를 인증하는 것은 좀 민망했을 테다. 뭐 그 사람뿐이랴. 여왕이 "자유와 평화를 수호"했다는 어떤 권력자의 공식 발언도 마찬가지다.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 여왕이라는 이름이 지닌 권위가 짜집기되어 만들어진 감동 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이가 여왕에게 느끼는 낭만적이고 맹목적인 존경처럼 나도 과 인격을 동일시 하는, 그런 대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진한 감동이 아니라 혹여나 강자에게 쉽게 감정이입하고 닮아가려는 야망이 있어서라면,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무척이나 섬뜩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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