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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02. 2020

아들이 본 나,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김본능과 유이성의 성장일기

학교에서 '주변 사람 소개하기'숙제가 나온 날

이성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소개하겠노라 했다.


제목: 엄마

제 엄마의 이름은 김00이고

제 엄마는 친절합니다.

제 엄마의 특징은 건망증이 있고,

제 엄마는 이쁩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요리 입니다.

또, 삼겹살을 좋아하고

주말엔 늦잠을 잘 잡니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를 많이 사랑해서

뽀뽀를 많이 해줍니다.


아들이 관찰한 나,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이쁜건 주관적이니까 뭐. 넘어가자.

아들의 표현은 늘 그렇듯 담백하고 짧지만

놀랍게도 이 안에 내가 다 들어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장점과 단점 특징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어릴때는 몰랐지.


아이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해하고 싶어서 너무 사랑해서.

아이는 자꾸 커가는데

나는 잊는게 주특기라

흐릿해지는 기억을

기록으로 붙잡고 싶었더랬다.



이 러브레터 같은 글을 본 날

쓰던 글, 썼던 글을 다 지워버렸다.

사랑해서 쓰는 글에

설명, 판단, 정의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 글들을 제출하고 브런치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앞과 뒤가 달라진다 사람 마음이. 죄송합니다!)



그냥

관찰하고 기록하는게 사랑인데

아이보다 내가 더 몰랐네.


아스퍼거 증후군, 영재 교육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공감과 동지를 얻고 싶었던 알팍한 욕심을 내려놓는다.

아이를 이해하는 데에 그 틀이 유용하고 편안했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 나는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관찰과 기록이 먼저였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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