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시인가 구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2주에 한 번 숲 생태 관찰을 하는 거랬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 학교, 그것도 우리 반 아이들이 몇이나 있다고 했다. 동네 언니가 이성이가 친구를 사귀기에 좋을 것이라고 추천해 주었다.아직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아웃사이더 이성이에게 친구를 만날 더 없이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산행길 입구의 공원에서 모이는데, 입구를 찾느라 약간 늦었다. 선생님과 통화하며 두리번거리는데 횡단보도 건너 산기슭 능선에 아이들 머리가 보였다. "와! 이성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성이가 손을 흔들면서 팔짝팔짝 뛰었다. "안-녕-!" 그러자 아이들 네다섯 명이 한꺼번에 "안-녕-!"하고 합창을 했다.
"친구들이야?"
"어! 친구들이야!!!!!"
친구들이라니,,,,저 아이들도 동의한거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꿀 꺽 삼키는 순간, 파란불이 들어오자 아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친구들을 향해 냅다 뛰어갔다.
코로나 시기. 이성이가 다시 학교를 매일 가기 시작한 건 한 달 정도 되었다. 그 전엔 주 1회 등교, 그 전엔 온라인 수업을 했다. 말하자면 지금은 벌써 11월이지만, 2학년으로서는 4,5월 정도의 새 학기 같은 상태인 것이다.
"친구들 좀 사귀었니?"물어보면 이성이는 참 이상한 질문이란 듯이 대답했다.
"코로나라서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사귀겠어?"
"친구들 이름은 알아?"이성이는 어이없단 투로 말했다.
"엄마. 코로나라서 말을 못 한다니까? 이름을못 물어보지"
설마 그정도야?싶지만 이성이는 단호했다. 선생님이 절대 말을 하지 말라고 했고, 물마실 때도 잠깐 마스크를 내린채 사람 없는 곳을 보고 마시라고 했다나. 아 정말 친구 사귀기 힘들겠네 요즘 애들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얼마전 학기 말이 되어서야 겨우 열린 반모임에서였다. 한해가 가는 아쉬움에 인사라도 나누자며, 놀이터에서 서로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눈만 보며 인사 나누는 신박한 반모임이었다. 그날 주워들은 이야기들은 충격적이었는데, 아이들은 이 코로나 시국에도 사귐을 향한 열정이 대단했다고들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한테 혼나면서도 화장실에서 급식 줄서는 시간에 소곤소곤 자신을 알려왔다. 비밀리에 방과후 놀이터 모임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렇게 엄마들끼리도 아이들을 통해 친목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였다. 우리 모르게 세상은 알게 모르게 다 돌아가고 있었어! 아 이 죽일놈의 깜깜한 정보력.
웬만한 모임은 일단 안 나가는 우리가 이번 숲 체험에 나선 것도 그런 조바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놀이터와 동네학원, 둘 다 적성에 안맞아(?) 안다니는 이성이에게 코로나 시국은 대외활동의 큰 위기였다. 한편으로는 외부의 자극 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파고들 수 있는 황금기이기도 했다. 무엇에든 장점과 단점이 있을테니. 아이가 누굴 사귀고 어울리든 관심 갖지 말고 억지로 친구를 붙이지도 말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2학년이 끝나가도록 단짝은 고사하고 친한 친구 한 명 없는 건 엄마 마음에 좀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어쩌면 친구관계에 엄마가 나서지 말자 라는 건 내가 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성이가 친구들을 편해 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나는 엄마들을 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일단 나는 전업주부이면서도 헌신적인 엄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교육 정보도 학교 정보도 제일 무딘 편에 속했다. 아이가 별난만큼 나도 별난 엄마일지도 몰랐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이런 나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엄마끼리 친구여야 아이끼리도 친구가 된다고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그런 1학년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가. 애써 자리를 마련해도 아이들끼리의 불꽃이 튀지 않으니 만남이 이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에프터 못받는 소개팅 같은거다. 내 정신만 피곤하고 내 마음만 안달났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이후 일체의 인위적인 노력을 딱 끊은 나였다. 편했다. 학교라는 판에서 이뤄지는 엄마와 아이의 2인1각 게임의 룰이 우리는 참 어려웠다. "이건 결국은 엄마들 친구 사귀는 모임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코로나가 터졌고 자의 반 타의 반의 고립 상태로 2학년이 되었다.
고립이란 단어는 무척 음침해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생산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자극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사람은 본연의 것을 꺼내어 다듬을 수 있다.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던 1년간 이성이는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의 이성이는 작년의 이성이와는 정말 다르다. 관계와 마음의 한계점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일상이던 1학년 암흑기의 이성이는 굳이 들먹이지 않으련다. 시간이 약이었을 수도 있고, 부단했던 우리 노력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까. 사람이 사람 되는 이유가 무엇일지. 어쨌거나 지금 이성이는친구라는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시들해졌을 지금, 나는 누가 우리의 좋은 이웃일까 호기심이 피어 오르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속도로 성장한다는 게 맞는 말인가보다. 지금이 나는 꼭 1학년 같은 기분이다. 아이도 그럴까?
고만고만하게 별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가끔 꺼내어보면 행복을 보장하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이성이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순간이 그랬다. 안-녕-! 하고 팔을 흔들던 아이, 아이의 설렘이 전해지던 뛰어가는 뒷모습. 나는 그 장면과 소리를 고이 접어서 기억의 서랍에 집어넣었다. 이성이는 숲 체험이 즐거웠다고 했다. 딱 그만큼 다음날의 학교는 아이에게 좀 더 익숙하고 편안했을 것이다.그거면 됐다.
덧>
그 날의 활동사진:
"이성아 너는 왜 하늘을 날고 있는거니?"
"아니, 선생님이 뭐 설명하셔서...애들이 다 몰려들잖아. 거리두기가 안돼서 내가 얼른 다른 데로 피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