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몸이 차다. 체질상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는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특히 손발 쪽은 에어컨 아래에서 곱기도 해서 냉방기기가 부지런히 돌아가는 사무실 안에서는 온열패드를 손목에 감고, 핫팩까지 깔아두고 일을 하곤 했다.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꼭꼭 입고 다니고, 바깥에서도 반소매로 다닌 적이 거의 없다. 땀을 잘 흘리지 않아서 긴소매 옷을 입어도 옷에 땀이 배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대구 출신이라 더위를 잘 견디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구에서 육십 년을 산 어머니가 더위를 제법 타는 걸 보면 꼭 출신지가 더위 내성을 보증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여하간, 체질 덕분에 혹독하다는 우리나라의 여름도 나에게는 꽤 견딜만한 계절이다. 그래서 날이 따뜻해지면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꽤 긴 시간을 활동한다.
반대로 겨울은 지옥이다. 집에 들어오면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이불 안에 들어가 앉아야 했고, 보일러와 온열매트를 다 끼고도 손발이 얼어붙어서 집 안에서 손을 호호 부는 일이 다반사였다. 뱃속이 덜덜 떨리는 듯한 오한이 들 때는 뭘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고 잠도 늘어난다. 체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장갑이나 수면양말을 착용하면 냉기가 안에서 돌아 손발이 더 얼어버리기 때문에 차라리 내놓고 있는 게 나았다. 한 번 식은 몸은 좀처럼 다시 따뜻해지지 않는다.
비접촉식 체온계는 온도가 아예 찍히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바깥에 있다 막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체온계가 측정을 하질 못해서, 한참을 안에서 기다리고 찍어야 34도가 표시되곤 했다.
곤은 몸이 따뜻하다. 체질상 몸이 좀 더운 편이라고 했다. 오월 말 쯤, 외출을 하려고 집 밖을 나서고 십 분을 걸었더니 곤이 이마빼기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땀방울이 비오듯 떨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목격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자 곤은 몹시 힘들어했다. 집에서 지하철 역을 오가는 약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옆에서 사람이 문자 그대로 낡고 지쳐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오면 곤은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나 먼저 앉았다. 사실 앉는다기보단 널리는 느낌에 가깝다. 어딘가에 축 늘어진 곤의 모습은 전기장판 위에 심하게 지져놓은 하리보 젤리 같았다.
반면 곤은 겨울이 되면 훨씬 활동적으로 변한다. 바버 재킷 하나만 달랑 걸친 채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곳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고, 장갑 없이 다녀도 두 손이 따뜻했다.
- 주머니 손.
고마워요.
수족냉증이라 장갑을 낄 수 없는 나는 겨우내 곤의 손을 잡고 지냈다. 곤은 아침에 잠을 깨울 때 내 손이 닿으면 피부가 인두에 지져지는 것 같다고 했다. 손이 다가오면 허리가 구불텅 휘곤 했는데, 손이 가까이만 와도 냉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잠이 잘 깨는 건 좋다고. 손발이 찬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니 좋은 일이었다.
작년 12월 말, 둘 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증상은 내가 먼저 느꼈는데, 아침에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열감이 느껴졌다. 온통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더듬더듬 곤을 깨워 체온을 재어달라고 했다. ……37.3도. 뒷덜미와 턱 아래, 가슴팍이 펄펄 끓는 듯했는데 37.3도라니. 이대로라면 신속항원검사도 검사비용을 그대로 내야했지만 손이 떨릴 정도로 괴로워 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새 체온이 더 올라있었다. 병원에서 측정한 체온은 37.6도. 간신히 미열 기준을 넘겨 비용 없이 PCR 검사를 받았다. 의사선생님이 시뻘겋게 두 줄이 그인 검사 키트를 보여주었다.
그나저나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37.5도를 왔다갔다하는 것만도 이렇게 괴로운데 이거보다 열이 더 오르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야말로 가늘고, 옅게 앓는 코로나 시기였다. 증상이 대단히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눈앞이 어찔하는 열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틀 뒤, 나를 보살펴주던 곤도 발열을 시작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숨도 가빠졌다. 새벽 즈음 끙끙 앓는 소리에 뒤척이다 깨서 보니 곤이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이쪽도 보통 괴로운 게 아닌 듯해 급히 체온을 쟀더니 맙소사.
41.0도.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게 가능한 숫자야?
비접촉식 체온계에서 처음 들어보는 삑삑 소리가 들렸다. 경고음이 너무 위협적이었다. 체온계 화면은 곤의 얼굴만큼 빨갰다. 사람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어? 괜찮은가?
머릿속으로 40도가 넘으면 단백질이 파괴되고 어쩌고 하던 이야기들이 마구 떠올랐다.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 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 곤이 정말 잘못되면 어떡하지? 자꾸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옆에 사람이 이렇게 앓는데 나까지 정신 못 차리고 겁 먹으면 어떡해.
원래 뜨순 사람이 열이 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래선지 탈력감과 마른 기침이 조금 더 심해지는 정도였던 내 증상과는 달리……. 곤은 밤만 되면 미친 듯이 열이 끓었다. 새벽에 옆이 뜨거워서 잠을 깬 적도 있었다.
- 내가 자기 손을 이렇게 시리게 느끼는데, 내가 자기 만질 땐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거야?
그래서 말하잖아. 가끔 자기 손이 리터럴리 뜨겁다고.
한 사람은 몸이 차고, 한 사람은 몸이 덥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슴은 모두 사랑으로 뜨겁다.
“자기, 아무 것도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 겨울엔 자기가 내 일 대신 하잖아.”
“자기, 나 이불 안에 가도 돼?”
“응. 가서 몸 지지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가장 힘든 계절을 버틸 수 있도록 북돋우고 도와준다. 나의 시린 겨울은 곤이 옆에 있으며 데워주고, 곤의 눅진한 여름은 내가 옆에 있으며 그 대신 움직여준다.
이건 또 얼마나 기가 막힌 밸런스인가. 성격을 떠나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