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면적 19제곱미터. 6평. 전세 1억 8천.
바로 앞건물과 방이 딱 붙어있어 햇볕이 들지 않고 앞건물 사람이 내 방을 들여다볼 수 있어 블라인드를 걷을 수 없다.
가끔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창을 꽉 막은 블라인드를 볼 때, 주말 아침 눈을 떠 천장을 봤을 때 왠지 기운이 빠지곤 한다. 꾸준히, 지금처럼 열심히 모으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득할 때가 있다.
서울살이의 목표 중 하나는 10평이 넘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10.1평이라도 좋으니까 방이 나누어진 곳에서 살고 싶어. 신발장 옆에 가스렌지를 붙여놓고 거기를 미닫이문으로 막았다고 분리형이 되는 그런 방 말고. 방이 두 개인 곳에 살고 싶다. 그게 꿈이었다.
부모님은 2년 마다 집을 옮기며 사는 게 무슨 삶이냐고 했다.
새집을 2년 마다 만나는 건데 오히려 좋죠. 짐 줄여가면서 살 수 있고. 아시잖아요. 저 물건 잘 못 버리는 거.
이제는 지금 덕질하는 아이돌 굿즈도 '그 정도로 쓸 것 같지 않으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버리는 사람이 되었지만, 10년도 더 전에 맏딸에 대한 정보 업데이트가 끊긴 부모님은 네가 그렇다니 다행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그렇게 받아들여주셔서, 나도 다행이다.
아무튼 그러다 보면 뿌리를 찾기가 힘든 무기력감이 오곤 했다. 아무래도 원룸에선 취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음식은 대부분 밖에서 먹거나 배달을 하게 되는데 배달 음식 용기를 정리할 때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떤 날은 포장해온 음식을 먹던 중에 음식이 지긋지긋해져 몽땅 버린 적도 있었고, 버린 음식이 얼마짜린데 싶어서 버린 것을 도로 꺼낸 적도 있었다. 바깥 음식 맛은 점점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이런 글을 보았다. 음식을 나에게 차려주어보라고. 별 거 아닌 음식이라도 좋으니 한 끼를 나에게 잘 차려주어보면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다는 글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무슨 바람이 불어선지 다이소와 근처 아울렛의 리빙 코너에 가 적당히 세일하는 그릇을 사왔다. 2천원 짜리 나무 그릇, 4~5천원 짜리 컵하며 가격은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다들 내가 가진 것 중에선 제일 예쁜 식기였다. 그리고 포장한 음식들, 데운 냉동 음식들을 모두 원래 용기에서 꺼내 내 나름대로 예쁘게 담아보았다.
떡볶이도, 라면도, 전부 1회용 용기에서 꺼내 그릇에 담았다.
냉동만두도 데운 뒤 접시에 옮겼고, 요거트도 적당히 떠서 작은 컵에 옮겨 담았다.
담긴 곳이 달라졌을 뿐인데 생김새가 꽤 그럴싸했다.
이게 무슨 효과가 있나 싶었는데, 의외로 우울함과 무기력감이 점점 사라졌다.
어설프긴 해도 눈앞의 식사는 그런대로 정성들여 차린 것 같았고, 외주를 하면서도 마치 내가 커리어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어떤 날엔 제법 소품을 이것저것 더해보기도 했다.
어디 올릴 것도 아니었지만 괜히 몇 없는 살림살이 중 뭘 놓으면 그럴듯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식사 속도도 느려졌고, 음식 맛은 조금 더 섬세하게 그려졌다.
배달 음식은 점점 덜 사먹게 되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와! 내가 이렇게 소중하네!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지만, 기분이 나아진 건 맞았다. 나는 덜 울적해지고, 덜 무기력해졌다.
투룸으로, 아파트로 살림을 옮긴 뒤에도 종종 배달을 하고, 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온다.
이것도 무조건 접시로 옮긴다. 커피 사온 것도 컵에 옮겨 담는다.
우울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서 차린 건데, 접시에 담아서 먹자.
이유 없이 울적해지고, 힘이 없어질 때.
아침에 일어나고, 씻고, 화장하고 출근하다 돌아와 포장한 음식으로 끼니하는 일상이 불현듯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나에게 식사를 차린다. 내가 차린 게 아니라도, 내가 차린 것처럼.
지금은 습관처럼 무언가를 정성껏 '담아'서 내가 먹는다.
플라스틱 용기에서 접시가 된 것만으로도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