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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07. 2024

크리스마스 선물, 고마운데 환불해주라.

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어, 아이폰이네.”

“응. 크리스마스 선물, 예전에 아이폰 갖고 싶다고 했던 것 같아서.”

“음……. 이거 환불해줘.”



작년 크리스마스였다. 서로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어떻게 보낼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가 코앞까지 다가와버렸고, 나는 그냥 집에서 질 좋은 소고기를 사서 굽고, 아껴놨던 와인을 드디어 비로소 개봉해 곁들이며 내년 계획이라든지,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곤도 알겠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를 조금 앞둔 날, 집으로 택배가 왔다. 곤은 내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기대하고 있으라고 했다. 답잖게 뭘 기대하라는 둥 꽤 싱글벙글 즐거워보여서 나는 선물이 뭐가 됐든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아이폰이었다. 언젠가 나도 폰을 바꿀 때가 되면 그때는 아이폰 미니를 써보고 싶다고, 작은 모양새가 너무나도 귀엽고 예쁘다고 했더란다. 그리고 맥북도 사용하고 있겠다, 사용자를 꽁꽁 가둬버리는 UX의 신묘함도 느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맙소사. 설마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나는 정말 그냥 해본 소리였다. 당장 갖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사고 싶어서 가격을 알아볼 만큼의 뽐뿌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미니는 귀엽지. 그런데 이제 안 나오잖아. 곤은 조심스럽게 15 프로를 구입했다고, 맥북과 키보드, 마우스도 분홍색이니 색도 맞춰서 샀다며 덧붙였다. 미니만큼 귀여운 발상이다……. 하지만.


“음……. 이거 환불해줘.”

“엥? 왜? 아이폰 써보고 싶다고 했잖아.”

“이 큰 금액을 지불하고 받고 싶을 만큼 엄청나게 가지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나도 아이폰을 쓰니까 겸사 자기 애플워치도 하고 커플로 하면 좋잖아.”

“나 갤핏2도 아직 멀쩡해. 얜 진짜 영생을 살 거야. S20도 아직 3년밖에 안 됐고 너무 쌩쌩해.”


곤은 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연인에게 뭘 선물하고 그 자리에서 환불하자는 얘길 들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면서 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그냥 받아주면 안 돼? 그래도 서프라이즈잖아. 크리스마스 선물이고, 내가 자기한테 주고 싶은 거라고.”

“그런데 내가 받고 싶지 않아.” 

“내가 주는 선물인데도?” 

“응. 자기가 주는 거란 거 알고 있어. 신경써서 색 고른 것도 너무 귀엽고 좋아. 기쁜데 이것보다 더, 엄청 갖고 싶어질 때 자기한테 모델 같이 봐달라고 할 거고 이렇게는, 갖고 싶지 않아. 나는 다른 받고 싶은 게 있어.”

“그것도 사줄게.”

“이걸 받기 싫다니까. 다른 걸 받고 싶어. 나는 선물론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평소엔 잘 못하는 거. 시간이 없어서든,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는 거였든 아무튼 그런 경험을 자기랑 같이 하고 싶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얘는 환불해줘.”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서 몇 번이나 말을 했더니, 곤이 퍽 상심한 기색으로 골판지가 뜯기지도 않은 택배 상자를 받아들고 문 앞에 내놓는다. 좀 속상해하는가 싶더니, 저녁을 먹을 때 즈음엔 평소의 곤으로 돌아와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곤이 갑자기 “우리 크리스마스 이브엔 나가서 먹을 거야.” 했다. 뭘, 어디서, 몇 시에 먹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좋다고 대답을 하고, 그날이 오길 기다렸다. 

당일이 되자 곤이 우리는 이브에 프렌치 다이닝을 경험해볼 거라고 했다. 크리스마스라 이렇게 임박해서는 예약 잡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을 텐데 예약을 도대체 어찌 잡았나 했더니 다 방법이 있다고. 모르긴 몰라도 J가 생각이 다 있다니까 그런 줄 알아야지. 그녀는 LG우승기념 세일전도 뚫은 자다.



아이폰을 내가 그대로 받았으면 또 어땠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3시간에 걸친 다이닝은 너무나도 즐겁고 멋진 경험이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재료로 만든 요리나, 알던 재료를 낯설게 조리한 요리, 조합이 생소해 도무지 어떤 맛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 요리들, 그런 요리에 빠져든 사람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좋은 재료를 고른다는 것, 경험에 값을 지불한다는 것……. 

밥 한 끼 먹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다. 여느 때보다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온 까닭, 어느 정도의 인파는 있으리라 예상했던 압구정까지 한산한 것을 보고도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곤은 알까? 이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둘도 없는 근사한 선물이 된다는 걸.


아이폰은 정말 고맙지만, 환불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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