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니면서, 데이트를 하면서, 출근을 하면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 현재진행형으로 노출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늘 문득 본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는 것을, 방금 다녀온 식당의 한상 차림이 아주 멋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틀림이 없다. 당신은 ‘보여주기’를 아는 사람이다.
물리적인 겉보기만 신경 쓸 수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은 나를 관리하는 데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 정성까지 appearance가 된다. 고급스러운 찻잔이나 다과, 직접 한 자수나 뜨개질 같은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여유와 높은 가치를 아는 안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생각해야하는 포지션에 선 이상 어떻게 노출되고,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사실 이 업계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상 겉보기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듯하다.
나가지도 않는데 예쁜 건 왜 그렇게 좋을까.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영향으로 인해 대면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보여지는 부분은 항상 중요하다. 노출에 대한 욕구, 수요는 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무척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재택근무나 사회적 거리두기, 록다운 등속의 조치로 큰 타격을 입은 패션업계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판매양상이 관찰되고 있다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화상업무가 증가하면서 하의의 판매량은 줄고, 상의의 판매량은 상대적인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인데, 화상업무를 하면 상반신만 보이게 되니 재킷이나 셔츠 등의 수요는 증가하고, 보이지 않는 하의의 수요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주류 소비량은 늘었다. 정확히는 가정용 주류의 판매량이 늘었다. 나가서 한 잔 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모두 집 안에서 저마다 주안상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혼술 해시태그 뒤에는 이제 #집술과 #홈술이 뒤따르고 있고, 대형 마트에서는 집에서 마실 때 곁들이면 좋은 안줏거리는 물론 가정용 생맥주 냉장고까지 함께 진열하고 있다.
나가지 않고, 만나지 않고, 만지지 않게 된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주기'가 이토록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때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보여줄' 이미지는 무엇이 가장 적합할까.
예쁜 쓰레기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큰 쓸모는 없지만 보기 좋은 것으로 가치를 다한 것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바야흐로 생존을 고려하여 무엇을 선택할 시절은 지난 우리에게 예뻐서 만족을 주는 것들이 결코 쓰레기일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예쁜 것들 안에서 맥락을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냥 멋진 것은 별로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모티프로, 왜 그런 멋짐을 찾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예뻐서 산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이, 이 서비스가 추구하는 것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우리는 ‘보여주기’를 연출하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보여주기’가 나오기까지의 스토리와 맥락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형체 없는 것들에 인격을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면서 우리는 그 가상의 인격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치장하고 싶어하는지를 상상한다. ‘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명랑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고, 이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꾸는 데에 크게 투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들이 선택한 브랜드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상상해야 한다. ‘오늘은 슬랙스’, ‘내일은 스니커즈’처럼 누군가에게 선택 받고, 뽐내고 싶은 브랜드이기를 바란다. 브랜드의 맥락과 소비자의 맥락이 맞아떨어진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FIT도 없을 테지.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큰 거리낌이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와 우리의 은밀한 취향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고보니 난 오늘 뭘 입었더라. 왜 이 옷을 골랐을까. 내일은 어쩌려고 이렇게 입고 나왔나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