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 May 18. 2020

나만 아는 트렌드라는 환상체

유행도 부지런히 찾아서 배워야하는 이 시대에

- 표준어 :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함

(표준어 규정 총칙 제1항)

- 유행 :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교양


  요즘처럼 나가 할 것이 많지 않은 때는 신선한 화제를 꺼내기가 참 어렵다. 비즈니스적인 관계에서든,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에서든 우울한 이야기는 오래 하고 싶지 않다. 울적한 주제는 우물 같아서 파도파도 끝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마실 것이 죄 사라질 때까지도 유쾌한 분위기로 나가지 못하고 물엿처럼 찜찜한 기분만 남은 채 대화가 끝나버린다.

  가족 이야기, 직장 이야기, 오늘이나 어제 보이던 신문 1면 기사. 대충 그런 주제를 털어놓고 나면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다. 특히나 '이 시국'에 가족 이야기나 직장 이야기는 까딱하면 윗 문단에 쓴 문제를 반복하며 순환참조식 결말이 날 위험이 있다.


스몰 토크 주제도 아카이빙을 해놔야겠어.


  적당히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고 일 이야기로 넘어가면 끝날 현장에서라면 크게 문제가 없지만 이따금씩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싶을 때, 점심식사 시간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미묘하게 길게 느껴질 때는 다른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잠깐 즐겁게 이야기 할만한 것, 공연한 말다툼이 나지 않을 만한 것, '밥맛 떨어지는' 내용이 아닌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라면 더욱 좋다. 덧붙여 대화에 끼이지 못하거나 견해가 크게 달라 침묵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말머리로 적당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끔은 내가 평소에 사무실에 앉아 무슨 화두를 던졌는지 되새겨본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아무도 모르는 가수라면 또 곤란해진다.), 어젯밤 퇴근길에 사먹었던 타코야키, 자주 보는 웹툰(물론 TPO에 따른다.), 유튜브 알고리즘, 새로 발견한 카페……. 그 중에서도 이야기를 꺼내봤자 관심 없는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들은 도로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남들 다 하는 것들만 남게 된다. 차트 1위부터 10위를 차지한 가수들의 노래, 음식점 입식 패널마다 보이는 메뉴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는 '핫'한 콘텐츠들. 식상하다면 식상하지만 저 많은 조건을 몽땅 만족시킬 수 있는 주제는 많지 않다.

  대화하는 현장은 모쪼록 즐거운 자리가 되어야 하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말과 말이 섞이는 동안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스트레스 받을 곳은 그밖에도 많다. 소소한 대화 때문에 감정이 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뿐만이 아니다. 남들이 던지는 화두에 뒤쳐지지 않게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자리에 오르는 화제가 요즘 유행하는 것들이라면 썩 관심이 없더라도 알아두어야 맞는 듯하다. 몇 번이고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게 되면 관계적으로 도태된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 소외되는가? 엄밀하지는 않지만, 상상해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요즘 유행은 신기한 게 많아요.


  요즘은 모르는 유행들이 참 많다. 모르는 유행이라니 이건 얼마나 이상한 수사람. 제법 부지런하게 유행을 탐색하고 쫓아가는 편이라 생각하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나만 모르는 유행이 적잖게 보인다. 유행하는 것들이 정말로 내 입맛에 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꾸역꾸역 주워삼키고 있는 때도 있다.

  유행하는 것들을 쫓다보면 이따금씩 내가 너무 몰개성한 것이 아닌지, 자기개발이나 주변 탐구에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닌지 염려스러울 때가 있다. 남들이 한 번씩은 다 해보니까 하는 것들, 남들이 가보니까 가보는 것들, 내 친구도 동기동창도 사니까 사는 것들. 그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빈도로 '왠지 나도 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할 것 같아'서 선택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천편일률적인 취향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어렵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다양해진 요즘 개성과 매너리즘은 끊임없는 딜레마가 된다. 그러나 공공성이 없는 주제나 보편성을 소홀히 한 유행은 유행으로 접어드는 데에 근본적인 난항이 있다. 대다수가 누리는 이상 유행은 개연성을 갖출 수가 없다. 표준어에 독특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표준어처럼 머리를 맞대고 쟁의하고, 오랜 시간 관찰하여 유행의 방침을 정하는 것도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남들 하지 않는 이야기를 고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제거리가 줄어든다. 나 혼자 하는 것이면 몰라도 말은 핑과 퐁이 완성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특별하게 하는 취미거리도 없고, 취미거리가 있다 한들 공감하는 사람이 최소 한 명 이상 있거나 본인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를 얼마고 듣는 데에 비상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는 금방 끊기게 될 것이다.  


  하나의 유행이 플로를 선두하는 대신 여러 갈래의 유행이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딱히 요즈음 시국이 이래서가 아니라 정말로 나가도 할 것이 많지 않다. 서울을 사는 나야 박물관이니 온갖 미술 전시니, 연극, 소규모 동호회 같은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크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히는 내 고향마저 방금 나열한 소수의 선택지에서 박탈되어있다. 공간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그 자리까지 찾아갈 수도 없다. 유행이 사회성이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엔터테인먼트를 공유할 공간과 시간의 부재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예술성과 유행, 대중성이 마치 경쟁구도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만일 유행의 속성이 대중성이라면, 유행이 가져야 할 비전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누리는 것이 좋은 공공의 가치일 것이다. 당장에 모든 사람이 나가 이 갈래와 저 갈래의 유행을 집도할 플로가 생길 수 없다면, 그 두 가지는 경쟁할 것이 아니라 저들끼리 합의를 하여 때로는 매우 고상한 것이었다가, 때로는 아주 클래식했다가, 때로는 매우 캐주얼하기도 하면서 제 성격을 바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참 이럴 때는 유행이 좀 개성도 있고 봐야 하는데 유행도 이래저래 참 큰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예쁜 건 왜 그냥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