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사주를 봐도 역마살이 부록처럼 따라다니는 팔자로 집을 나와 산 지 15년 째 짧게는 반 년, 길게는 이 년마다 보금자리를 옮겨다니고 있다.
세 들어 사는 방도 연장해본 적이 없다. 본가에서도 내 방을 없애버린 지 꽤 됐다. 본가에 돌아가면 서재나 거실에 딱 잠만 잘 수 있게 매트리스만 깔아준다. 그렇게 따지면 집도 여행하다 잠시 자고 가는 여관旅館인 셈이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해마다 옮겨다니면서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사실은 해마다 옮기는 게 좋다.
가족들은 잦은 이사와 이동을 곧잘 불안감이라는 정서와 연결한다. 정처없다는 말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정말 그럴까?정처없음은 일종의 서정이고, 자극이다. 바로 그 불안한 상태가 내게 여러 가지 발상을 전해주고, 갖은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위안이어도 좋다. 이삿짐을 쌀 때, 출장 준비를 할 때, 짤막한 여행을 위해 가방 하나를 채울 때……. 나는 이방인이 되려고 준비하는 것이니까. 나는 떠도는 게 좋다.
서울시민의 절반 이상은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치면 서울도 타지인, 즉 이방인의 도시인 셈이다. 이방인이 많아서 좋은 점은 똑같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들 자기 살던 가락이 있어 말씨에도 눈짓에도 독특한 습관이 배어있다. 처음엔 그만해도 충분했다가, 차츰 서울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답답한 것도 아니고, 질리는 것도 아니고 보고 있으면 정말로 막막한 거다.
나는 대외적으로는 대개 카피라이터라는 직책명으로 나를 소개하고 있지만 때에 따라 편집자님이 되기도 하고, 에디터님이 되기도 한다. 이상하게 에디터보다는 카피라이터라고 하는 편이 훨씬 “아~.”를 들을 확률이 높은데, 어째 “그래서 어떤 거 해요?”라고 되묻는 비율은 대동소이하다. 그 때마다 “이것저것 다 써요.”, 궁금증을 푸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대답밖에는 해드릴 수가 없는데 사실이라 어쩔 수가 없다.
카피라이터는 정말 닥치는대로 다 쓴다. 내가 있는 회사는 아주 작은 조직이라서 대외용 보도자료나 홈페이지, 인스타그램에 사용되는 짤막한 카피, 브로셔, 내부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과 보고서에 적힌 문장 및 단어까지 카피라이터의 손을 거친다. 시즈널 그리팅 문구와 연하장도 카피라이터가 쓰고, CS에 필요한 FM 문구도 이쪽의 일이다.
요컨대 성분이나 소재처럼 내 상상력을 더하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텍스트가 들어가는 모든 부분에 다 쓰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디자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보수 텍스트 생산자도 사람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으면서 참신하고 ‘신박’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생각해내는 게 곧 ‘업무’다. 오피스에 앉아서 PC와 잡지로 자료를 조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디자인 팀은 이따금씩 ‘인스피레이션’이 필요하다며 인테리어 자재 전시나 문구편집샵, 옷 가게, 서점을 다녀오곤 한다. 나도 같은 이유로 가끔 나가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어, 그래요. 나가서 해요.”
오피스 안에서만 지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대표님도 이해해주기 때문에, 나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이만큼 확장되지 않았던 입사 초기에도 비교적 자유롭게 업무할 곳을 정할 수 있었다. 집이 되었든, 카페가 되었든, 강 남쪽에 있는 공유오피스든. 날씨 좋은 날엔 모교 캠퍼스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제일 빠른 거 주세요.”로 생각보다 낯선 곳에 많이 갈 수 있다.
주말에는 빨간색 경기버스를 아무 거나 잡아타고 시외로 나가거나, 가까운 도시철도 역에 들어가 종착역까지 무작정 앉아만 있어보기도 (1호선 청량리 행처럼 얼마 타지도 않았는데 내려야하는 불상사도 있다.)하고, 행선지만 찍어놓고 서울역 매표창구에서 “제일 빠른 거 주세요.”를 외치기도 한다.
나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구경이 인간에게 상당한 위안을 준다는 건 최근 2년 사이에 여실히 깨달았다. 그 동안에는 백화점이나 번화가, 전시실, 공연장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다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듣곤 했다.
내가 모든 종류의 삶을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 한계가 문득 새삼스러워질 때는 타인이 내 막막함을 위로해줄 수 있다.
나갈 때 목적이 있어 나가는 건 아니다. 걷다가 재미있어보이는 곳이 있으면 들르고, 노상에서 공연을 하거나 토크 쇼를 하고 있으면 서서 듣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무 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되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돌아온다.
좋으면 가야지, 어떡해.
갈 곳은 보통 수요일이나 목요일 쯤 정해지는데, 멀리 나가기로 결정한 경우 목요일이 지나버리면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조금만 결정이 늦으면 서울로 못 돌아온다는 것도 좋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서울을 나갔다가 일요일에는 어떻게든 돌아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들 어딜 그렇게 바쁘게 다니는 걸까? 고향에 다녀온 거라면 이 사람은 어떤 사연으로 서울에 오게 되었을까.
단언컨대 코로나19는 어색한 곳에 떨어져봐야 사는 카피라이터의 삶에 치명상을 입힌 주 원인이다.
낯설게 하기를 만드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그냥 내가 낯선 사람이 되어 쓰는 거다. 물리적 소격에서부터 소격효과를 찾는 셈이다. 글을 쓸 때 손원고를 고집하는 것도 생각한 것들이 물적 자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첨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어깨로, 손으로, 종이로 가는 생각들은 공사를 막론하고 단 한 번도 처음 생각한 그대로 쓰인 적이 없다. (이 글도 상철 기자노트에서 Mac 메모 앱으로, 메모 앱에서 다시 브런치 에디터로 이사를 다녔다.)
키보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아직도 어색해서 초고는 대부분 이면지나 노트에 손으로 쓰고, 쓰기를 마치면 그걸 다시 컴퓨터로 옮겨 적는다. 1교와 2교는 프린트해서 다시 손으로 쓰고, 미팅을 할 때도 메모는 손으로 한다. 동기들 가라사대 최첨단 구닥다리다.
때문에 무작정 뛰쳐나간다 해도 짐이 가볍지는 않다. 책 한 권, 볼펜, 상철 메모지와 핫팩, 휴대전화, 손수건, 일회용 인공눈물 두 개가 반드시 챙겨야 할 준비물이다. 노트북과 패드, 패드 전용 키보드를 전부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 갈 때는 노트와 펜을 버릴 수가 없다.
서울이 지긋지긋해지면 나갈 수도 있어야한다. 새벽 한 시 삼십 분 취침하고 여섯 시 반에 일어나는 일상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면 어디로든 나가야한다. 몸이 나가도 좋고, 마음이 나가도 좋다. 눈이 새로운 것을 읽게 하고, 머리가 낯선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자.
나에게 생소한 것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언제든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든 것이 상상想像이듯 나도 낯선 곳에 있어야만 한없이 상상할 수 있다. 내가 외인일 때만 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