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에세이 첫 발견!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에세이를 [에세이]로 읽는지 [에쎄이]라고 읽는지도 모를 만큼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은 또 하나의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지만 에세이는 정해진 사람, 정해진 사건, 정해진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답답하고 영 별로다.
심지어 고집이 쎄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치관이 다르다 싶으면 손절.
때문에 나에게 에세이는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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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동생은 에세이를 종종 읽는 듯 했다.
일이 있어 광주에 내려왔다가 에세이를 추천해주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싫었지만, 나의 성향을 알면서도 추천해준데에는 이유가 있겠노라고 기대를 하면서 봤는데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에세이는 '내밀예찬'이지만 이 마저도 '엥 이건 아닌 듯'하면서 읽었지만
이 책은 같은 부분은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부분은 호기심으로 받아들여졌던 유일한 에세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으면서
이런 글이라면 나도 써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책이기도 하다.
(작가글)
이십 대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로워했고
이때가 한참 일에 대한 권태기도 심할 때였고 또 스스로의 관심과 흥미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는데
'이십 대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로워했고'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이 책은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끝까지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뭐 취업을 하고 적응하는 혼돈의 시간을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사회 초년생의 이십 대 중후반들이 무료한 일상과 반복되는 업무를 하며 누구나 겪는 시기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 겪는 시기니까 무서웠다.
그래서 이 사람은 스스로의 이십 대에 대해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로워했고'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걸 어떻게 지나왔는지가 궁금해서 읽고 싶어졌다.
(뒷 표지)
인생이 계절처럼 흐르는 줄 알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힘든 시기를 버티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걱정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로 행복하길 포기한 채로 지냈다. 나를 즐겁게 해줄 일은 나중으로 미뤘다. (중략) 매일 버티기만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기력한 채로 그놈의 '때'를 한없이 기다리며 흘려보낸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때로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삶이 있다.
자신으로 인해 혹은 외부 상황으로 인해 부서질 것만 같은 스스로를 겨우 붙잡고 흔들리며 버텨야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때는 대단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말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또 기특한 것이다.
그런 때가 아닌 평범한 때는 어떨까?
나는 대체로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하는 만큼 벌 수 있으니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지금은 일을 하고
'하루는 아쉬우니까 일주일정도 다녀올 수 있을 때까지 여행을 미루자'며 지금은 가만히 있고
'시간이 되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자'며 관심없는 기삿거리나 들추고 있고
'나중에 더 많은 경험이 쌓이면 그때 내 글을 써보자'며 지금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다.
'적절한 때'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어쩌면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서 '때'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걸까?
P. 18.
그날 산 컵은 침대 맡에 두고 매일매일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다. 색감도 재질도 입술에 닿는 감촉도 모두 훌륭해서 볼 때마다 흐뭇하다. 이렇게 한 발자국씩 만족스러운 일상에 가까워지는 거라면, 이젠 제법 돈 좀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해도 좋겠다.
주변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라, 매일 쓰는 물건은 예쁜 것들로 바꿔라
명령조로 유행하는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정말 싫어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경험담으로 써놓으면 와닿는구나.
정말 사소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머들러가 그렇다.
아메리카노보다는 달달한 커피를 좋아해 바닐라라떼를 좋아한다.
커피값을 아끼겠다고 바닐라시럽을 사서 집에서 우유와 함께 만들어먹곤 하는데,
에스프레소와 시럽, 우유를 섞기 위해서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하나의 젓가락만 사용해 음료를 젓고는 씽크대에 넣는다.
이대로 설거지하기엔 자원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더 쌓아놓고 한 번에 설거지를 한다.
이게 귀찮거나 싫지 않다. 전혀 의식하지 않는, 평범하게 스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머들러를 사고나서는 달라졌다.
스타벅스나 다른 카페에서 머들러를 보긴 했지만 젓가락을 쓰면 되지 굳이 젓는 스틱까지 사야할까? 생각했다.
어쩌다 이케아를 갔는데 투명하면서도 진한 푸른빛을 한 머들러가 그날따라 예쁜 쓰레기처럼 느껴졌고
예쁜 쓰레기는 예쁨으로서 쓸모를 다하기 때문에 쓰레기와는 달라서 사야한다(?)
그땐 이게 이렇게까지 만족감을 주는 물건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똑같은 원두, 똑같은 시럽, 똑같은 우유를 똑같은 컵에 넣어 만들었다.
달라진 점은 젓가락이 아닌 머들러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는데,
유리와 유리가 부딪히며 내는 맑은 소리가 어쩐지 기분이 좋았고 투명한 컵 안에서 갈색과 흰색이 섞이는 것이, 그리고 그것들을 젓는 파란색의 머들러를 보는 게 상상 이상으로 행복했다.
아무 물건이나 집어 다른 용도로 대충 쓰는 게 아니라, 색깔도 길이도 모양도 100% 맘에 드는 물건을 제 용도에 맞게 쓰는 것에 대한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p. 25.
좋아하는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 순간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구나. 러닝타임 1시간짜리 행복은 아쉬우니까. 애당초 행복을 보러가지 않는 것.
만약 작가가 여기에서
'좋아하는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욕심에'라고 썼다면 나는 화가나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짧게 지속되는 행복이 아쉬워서 더 길게 지속되는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는데
'좋아하는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안쓰러운 그 마음을 '욕심'이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하잖아!
이런 단어의 섬세함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글을 정성들여 썼는지를 나타내는 것 같다.
아무튼,
한 일주일 정도는 푹 쉬고오는 게 좋겠다며 제주여행을 미루고 있었는데
조만간 장마가 오기 전에 주말을 이용해서 제주도에 다녀와야겠다.
천백고지에서 봤던 그 쏟아지는 별들의 벅참을 또 한 번 경험하고 싶다.
p. 32.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먼 훗날 우리가 돌연 인생의 의미를 잃고 헤맬 때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다.
(중략)
매일 일기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p. 41.
예전에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삶의 질은 다만 시간을 어떻게 때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었다. 그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괴로운데 그렇다고 일만 계속 할 순 없으니까. 적당히 재밌게 할 만한 소일거리를 찾아야 된다는 뜻. 새로 찾은 소일거리 덕분에 아마도 당분간은 죄책감 없는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p. 62.
책을 '사서' 보는 사람이 되기를 오랫동안 꿈꿨다. 예전에 누가 성공의 척도가 뭐냐고 물었을 때, '사고 싶은 책을 통장 잔고 걱정 않고 사는 것'이라고 답한 적도 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싶은 거였다면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는 빌린 물건으로는 하면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긋거나, 한 페이지만 찢어서 따로 보관하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재밌게 읽던 책을 선물하길 바랐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을 살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했다
p. 75.
휴가 내고 제주도까지 와서 왜 밤새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딱히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까지 열심일까.
모처럼 시간이 넉넉한 김에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비장함보단 스스로를 해치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 잘 모르면 뜻하지 않게 많은 걸 망치게 되니까. 나에게만 의미있는 예쁜 쓰레기 같은 얼룩들이라도 부지런히 기록해 두는 것이다.
누가 그러던데. 인간은 결국 누군가 나를 헤아리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 법이라고. 내가 쓰고 싶은 글도 결국 나를 위로하는 글이었을까.
p. 151.
어쩌면 내게 무해한 사람은 오직 나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친구를 찾기 전에 나부터 나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지. 아무래도 그게 먼저인 것 같다.
"행복에도 요령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