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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4. 2023

용한 의원

아무튼,의사

단언컨대 그곳이 최고라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사람들은 병원을 추천해 줄 때도 예외 없이, 사실과는 무관하게 강력한 어조로 그곳으로 가보라 말한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나만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치료와 휴식. 그 모든 것이 온전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곳. 용한의원.

대칭이 맞지 않는 유리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면 익숙하고도 위안이 되는 한약재 향이 풍겨온다.

문을 열고 간호조무사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옷을 걸고 아픈 부위를 말하며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는다. 색이 바랜 민트색 칸막이 사이로 얇은 천으로 된 하얀 커튼이 쳐지고 낮은 베개에 머리를 대어 누우며 생각한다.

편하다.


찜질팩을 올려놓고 기다리다 보면 한의사 선생님의 슬리퍼 혹은 구두 소리가 들린다. 분주한 발소리.

하지만 산만하지 않고 갈길을 정확히 아는 재빠른 소리.

곧 내 차례겠구나 싶을 때 알람이 울리고 착- 소리와 함께 커튼이 걷히며 "어디가 불편해?" 하고 묻는다.

그는 내게 말을 놓는 유일한 의사다. 내가 그것을 허락했으므로. 이것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나오겠지만 나는 첫마디를 무례하게 반말로 뱉는 사람을 참아주지 않는다. 다시 민트색 공간으로 돌아가서,

침을 놓고 증상이 있는 부위에 온열기구를 쐬어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눈 후 다른 환자에게로 그는 향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몸이 노곤해진 틈을 타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상념들을 떠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알람소리와 함께 간호조무사의 바쁜 손길로 침이 순식간에 제거되고, 옷을 주섬주섬 올리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조금 기다리시면 원장님 오실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 엎드려서 몸에 힘 빼고-."

다시 치료가 시작되는 첫마디. 뼈가 두둑 소리를 내며 맞춰지고, 불편했던 곳을 교정하고 파스를 붙이며 다음을 기약한다. 이보다 몸상태가 더 좋지 않을 때는 대침이나 봉침, 부항이나 뜸을 뜨기도 한다.

치료를 받는 동안 몸의 명칭과 병의 예방법이나 대처법을 알려주고 그간의 일상과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지점이 내가 한의원은 이곳이 최고다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는 의사의 기본은 병증을 이해하고 정확히 치료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것임을 알고 성실히 임한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마음을 살펴주고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의학적 지식을 나눠주는 것은 그 당연함과는 다른 그의 선택이고 정성이다.

그가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하고 있고 그래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환자는 다른 의미의 회복을 경험한다.


나는 그를 고등학교3학년 때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잘못된 자세로 앉아있던 탓인지 요추염좌로 3일간 학교도 가지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는데 그 시기 그는 이제 막 개원한 청년 한의원장으로 우리 동네 어르신들의  단골 이야기 주제로 등장했었다.

"젊은 의사양반이 아주 친절하고 다정해."

"거기 가서 받고 나면 하루 만에 곰방 나서버려. 마이 안 가도 돼야."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조금 상태가 나아진 나를 데리고 한의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반듯한 한의사선생님과 마주했다. 신기하게도 두 어번 치료를 하고 나니 허리상태가 좋아져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몸의 이상이 생기면 (체하거나, 삐끗하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등등) 용한의원으로 갔다.

그리고 아빠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한 달여간 몸져누웠을 때, 그는 진료가 끝나는 7시 이후에 거동하기 어려운 환자인 아빠를 위해 집까지 왕진을 와주었다.

그때의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수고롭고 감사한 일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엄마가 의사선생님 드린다며 열심히 호두를 까서 유리병에 채우는 그 마음도.

그 시기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표시 내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가난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던지라 우리 집에 방문하는 그의 발길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않을 비밀이기도 하지만 그가 베푼 배려는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었다.

나는 가끔 울컥하고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마음이 있는데 그건 그에 대한 고마움, 감사함이다.


알고 지내온 시간이 20년 가까이 되면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뭐라 부를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것이 생긴다.

나는 그가 여전히 자신의 체력을 관리하고 진지하게 의술을 익히는 태도를 보며 깊이 존경하고, 그의 건강과 행복에 그 어떤 어두운 그늘도 드리우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도 내게 건강을 지킬 것과 고질적인 허리, 어깨통증을 관리하는 법을 매번 정성을 다해 설명해 주며 나의 삶을 격려해 주는 것을 느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픈 부위는 조금씩 옮겨가며 사람을 괴롭히는데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셨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큰 수술을 요하거나 정밀한 검사가 필요한 통증이 아니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 용한의원인데 몇 번의 이사로 병원에 가려면 왕복 1시간 10~20분이 걸리지만 기꺼이 그곳으로 향한다.

다른 가족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만 나도 거리도 멀고 급하게 치료받아야 할 순간이 생겨 지금 살고 있는 동네와 그 외에 다른 곳의 한의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아프다고 말한 부위와 상관없는 곳을 뇌의 문제라고 오진한 곳, 한의학 전공이 아닌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치료법 수료자로 돌팔이가 의심되는 (이 단어로의 표현만이 적절할 것 같다) 곳, 치료는 받았으나 몸이 회복되지 않고 횟수만 늘어나 피로하고 약 짓기를 강요하는 곳 등등 결국에는 아빠차에 누워 앉아있을 수도 없을 만큼 아픈 통증을 끌어안고 빨리 용한의원에 도착하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몸이 낫는 것도, 그 과정에서 위로와 힘을 받는 것도 그곳에서는 가능하기에 계속 그 자리에 있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용한의원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는다.

그가 화타와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래전 그 천재적인 의사의 손길을 경험해 본 적 없고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는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여러 번 발걸음 하지 않도록 치료하는 그의 실력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의 진실된 마음이 그곳을 찾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귀한 일인지 그에게 전하고 싶었기에 글로 이렇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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