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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8. 2023

못되고 오만한-말을 왜 그렇게 해요?

아무튼,의사

*좋은 의사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에 피하세요~하고 싶은 병원도 소개해 본다.


글을 쓰기도 전에 그 얼굴들과 상황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하루 종일 피하다가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질겅거릴 수 있는 주전부리를 옆에 두고서.

의사는 진찰하고 치료하는 것이 주된 일이니까 친절은 그의 선택과 기질인 것이지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지내온 나지만 정도가 너무하다 싶었던 의사들이 있어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이를 출산하며 혈전 증세로 눈의 시신경 일부가 손상되었던 나는 조리원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왼쪽 눈에 암막커튼이 쓰인 것처럼 세상의 일부가 검게 보였고 그다음 날 바로 새로 태어나라는 안과에 가서 진단받은 내용은 3일 이내에 혈전으로 막힌 혈관이 뚫리지 않으면 왼쪽눈은 실명한다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몸에 남은 수분까지 짜낸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눈은 조금씩 회복되었으나 이미 손상된 일부 시신경은 돌아올 수 없어 제거하고 실 굵기만 한 부분만큼 세상을 흐릿하게 보며 적응해야 했다.


꾸준히 약을 먹고 최대한 눈을 보호하고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몇 달을 지내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던 날 오른쪽눈도 심각한 상태라 녹내장 예비 시신경 제거 시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담당의사가 사정이 생겨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무미건조한 말투로 왼쪽눈보다 훨씬 양을 많이 제거해야 하니 회복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지금 수술을 결정을 하라고 했었다.

나는 왼쪽눈에 이어 오른쪽눈까지 그렇다고 하니 속이 상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잠시 말을 잃었는데 재촉하듯이 그가 말했다.  "결정을 해야 날짜를 잡고 진행을 하죠."

"의사 선생님. 제가 왼쪽눈은 피를 많이 흘린 출산 때문에 혈전이 와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 오른쪽눈은 왜 안 좋아진 걸까요? 의식적으로 제가 왼쪽눈을 안 쓰려고 하다가 오른쪽눈이 무리한 건 아닌지-"

그는 말을 끊으며 얕은 한숨을 쉬고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죠 눈이. 각막도 얇고 원래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바로 눈동자를 굴려 차트를 들고 있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일그러지는 그 표정과 내 표정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묘한 위로가 되었다.

그렇죠? 저만 이 말이 상처가 되는 거 아니죠? 나는 단지 눈이 안 좋아진 이유를 알면 더 조심하고 예방하고 싶은 마음에 물어본 것인데 사실인 말이라 해도 그것을 전하는 방식이 아팠다.


그는 정적이 흐르는 그 순간을 깨고 짜증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 저는 말씀드렸으니까 결정되면 연락하고 다시 오세요. "

그가 나를 대하는 눈빛, 냉담하고 무심한 태도를 떠올리니 그곳에서 수술하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다른 곳을 소개받아 치료를 마쳤다. 한동안 약하게 태어난 나 자신이 싫다는 생각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돌 지나 찡그리는 눈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그때의 일을 말할 때 애는 아프다고 우는데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며 노여워하셨던 모습도 떠올랐다. 우울해졌다.


또 다른 기억을 꺼내보자면 아이가 4살 때 소파에서 장난치다 단단한 팔걸이 부분에 코가 부딪혀 다친 적이 있었다. 멍이 들고 부어오르길래 소아과를 가야 하나 정형외과를 가야 하나 고민할 때 친구가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이비인후과에 먼저 가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급하게 검색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는 그 병원은 내게 물 없이 퍽퍽한 살코기만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선사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한다며 아이 혼자 30을 셀 수 있냐고 묻기에 어렵다고 했더니 간호사는 그래도 일단 해보자고 아이를 컴컴한 촬영실에 밀어 넣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꼭 감고 숫자 아는 데까지 세보라고 하는데 아이 귀에 그 말이 들릴 턱이 있겠는가. 결국 두 번 모두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하고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의사는 처음부터 반말도 아닌 것이 존대도 아닌 것이 몹시 건방져 보이는 태도로 입을 뗐다.

"아이 4살이면 다 하던데. 코뼈에 이상이 있다 없다 제가 말할 수준의 사진이 안 나왔거든요?"

"그럼 확인하는 방법이 다른 건 없을까요? 금이 간 정도라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마취해야죠. 다른 애들은 다 잘해요. 유난히 겁이 많은가? 근데 또 부어오른 거 보면 금이 안 갔다고 보기도 뭐 하고.. (아이 코 살짝 만지더니) 근데 이 정도 누르면 아파하는데 멍만 들었으니까 괜찮을 것도 같고-"

"아직 4살이라 혼자 들어가서 촬영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다 하던데? 아 뭐-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고 다시 오시고- 계속되네 안되네 말할 순 없잖아요?"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 듯

"엄마. 나 사진 못 찍어서 안 할래. 집에 가자." 하고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연고를 처방받아 나오면서 금이 가거나 부러진 걸 제때 치료하지 못해 코가 휘거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함께 상황은 이해하지만 아이가 듣는 앞에서 의사가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가며 무안 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다. 말하는 중간중간 비릿한 그 웃음도 기분 나빴다.

그 비소는 무엇을 담은 의미였을까 싶을 정도로 나만 느낀 감정은 아니었다. 그날은 남편과 같이 방문했는데 내내 옆에서 별 이야기 하지 않던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국으로 향하던 길에 입을 열었다.

-묘하게 기분 나쁘네. 사람 대하는 게 원래 저런가? 잘 참았어.

평소 같았다면 반말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상대에게 바른말하던 내 성격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아이의 치료가 우선이 되는 상황에서 의사와 안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좋을 리 없을 것 같아 말을 아꼈지만 한마디 하고 나올걸 그랬나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참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분명 더 큰 황당함과 상처로 남았을 그의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지.

이후로 그곳에 관한 들려오는 평가는 내가 느낀 그대로였고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고 찾아갔던 사람들도 기분이 상한 후기를 남긴 것을 보며 위안이 되면서도 묘한 안타까움도 느꼈다.

이제는 좀 아실는지- 의사가 꼭 친절할 필요는 없으나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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