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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5. 2023

사람을 심는다는 치과

아무튼,의사


첫 기억이 좋지 않았던 탓일까? 치과 방문을 필요 이상으로 꺼리고 겁을 내던 나는 적은 비용으로 충치치료만 해도 되었을 치아를 신경치료까지 하게 만드는 스스로의 미련함에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집 가까운 곳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치과를 만들겠다는 다짐.

먼저 과잉진료를 하지 않아야 하고, 나의 엄살을 무심함으로 대해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사오기 전, 10대부터 20대가 될 때까지 다니던 치과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셨고, 그 이후에 소개받아 갔던 곳에서 잘못된 치료로 맘고생을 심하게 한 후 믿을만한 치과를 찾아 헤매었다.

과개교합 옥니, 턱의 넓이보다 치아 개수가 더 많아서 아랫니가 틀어진 모양을 하고 있는 나는 남들보다 더 꼼꼼하게 치석 관리가 필요해서 이곳저곳 다니며 스케일링은 받았지만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치과에 발길이 뜸하다 아이를 출산하고 잇몸이 무너져 염증치료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랑니 발치도 필요한 상황이 닥치자 살고 있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치과로 걸음 했다.


그렇게 찾아가게 된 '인플란트 치과'는 대표 원장이 있고, 개별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며 각자의 몫을 가져가는 치과의사 4~5명이 따로 진료를 보는 형식이었다. 소개를 받아 가는 것이 아니라면 방문하고자 하는 시간이 비어있는 의사를 간호사가 지정해 주는 방식인데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이유는 처음 진료를 받으러 갔던 날 치과의사 선생님의 농담에 피식-웃음이 나고, 큰 치료를 앞두고 긴장되긴 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머물러 있었던 그날 오후의 진료실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적당히 두둑한 뱃살과 동글동글한 인상의 그를 나는 혼자'호빵쌤'이라는 부른다.

그는 마취가 되었는지도 모르게 마취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윗입술을 살짝 잡고 흔들면서 요즘 자주 보는 드라마 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돌의 무대에 대한 소감, 말이 통하지 않아 걱정이 된다는 사춘기 아들에 대한 고민 등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미 마취는 끝나있다.

" 다 끝났슈~ 하나도 안 아프쥬? 흔들 때 이미 다 바늘 들어갔어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곁들이며 안심시키고 어떤 치료를 어떤 방식과 재료로 할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마음 편히 있으라며 치료를 시작한다. 아픈 느낌은 없지만 단지 겁이 나서 내는 신음 소리에도 타박하지 않고 거의 다 끝나간다고, 잘하고 계신다고 응원하고 격려해 준다.


그럴 때마다 의사 잘 만났다는 생각을 했고 그날 그 시간에 치과를 가려했던 선택했던 나 자신과 이 의사에게 나를 안내한 간호사에게 고맙다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큰절을 올리게 된다.

첫 치료 이후 오래된 보철치료의 재료 교체가 필요해서 방문했을 때 비용의 부담을 덜어줬던 것 , 또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울 때도 이물감 없이 본래 치아와 잘 맞을 수 있도록 수도 없이 다듬고 끼웠다 뺐다를 반복하며 애써주셨던 것, 치아교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게 명쾌한 답을 제시해 줬던 것.

이 모든 일들이 그저 감사하고 기쁜 순간들로 다가와 든든한 치료자가 생긴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된다.

"티브이에 나와서 돈 벌어야 하는 거 아니믄 그냥 살지 그래유? 교정을 해도 아주 오래 걸리는 케이스고, 해도 한 번씩 다 치아를 갈아줘야 고르게 만들어지는데 그건 조심스럽쥬. 금가면 안되니께. 또 발치하고 나믄 얼굴형이 어찌 바뀔지 그것도 장담 못하구유~라미네이트 같은 거 잘못하믄 뭐 베어 먹지도 못해유~. 남들은 내 치아 모양이 어떤지 자세히 들여보지도 않고 본인만 신경 쓰이고 그러는거쥬~아무렇지도 아녀유."

그의 말에 그동안의 걱정들이 정말 스르르 공중에 흩어지면서 가벼운 발걸음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선을 넘지 않는 그의 유머가 신선하고 재밌으며, 스스럼없이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그의 말솜씨가 부럽기도 했고 또 좋기도 해서 치과를 소개해달라는 지인들에게 그를 추천하면 다녀온 사람마다 '그 의사 선생님 너무 유쾌하고 재밌다. 그런데 치료는 정확하고 깔끔하다'라는 말들을 내게 전해온다.

그에게서 내가 느낀 좋은 점들을 다른 사람도 알아본다는 것과 그가 누구에게나 늘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삶의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탐험가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한 번은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의사에게 진료받고 치위생사 A가 스케일링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사무적인 태도로 경직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 그 의사가 치위생사 A를 환자가 듣기에 불편한 지적과 수직관계가 명확한 말투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호빵쌤과 함께 일할 때 자주 웃고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우며 부드럽게 느껴졌는데 같이 일하는 상대를 편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그의 부재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눈으로 감정으로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쓰라렸다.

씁- 소리 하나에 잔뜩 주눅 들어 긴장하는 그녀와 빨리 진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그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 누워있는 나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호빵쌤 보고 싶어 흑흑."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유독 지치고 버겁게 느껴질 때, 호빵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위무하고 일으켜 세우는지, 어떻게 환자에게 매번 유쾌한 기운을 전할 수 있으며 어떤 마음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여쭤보고 싶다.

마스크로 가린 입 그러나 눈이 이미 웃고 있는 그와 반가운 인사를 마주하게 될 때 꼭 질문해 봐야겠다.

아마 그게 왜 궁금해유? 라고 물으며 사람 좋은 미소로 답하시겠지.

하지만 치과는 가고 싶지 않다. 이 무슨 모순인가.. 그래도 스케일링은 꾸준히 받아야 하니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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