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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9. 2023

똑똑한 이비인후과

아무튼, 의사

 환절기에 감기로 자주 고생하는 편이 아니어서 별다른 생각 없이 계절의 변화를 지나왔는데 남편의 심한 비염으로 이제 나는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늘 긴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봄과 겨울.

연애할 때는 비염이 있는 줄도 코를 그렇게나 심하게 고는 사람인 줄도 몰랐는데 신혼 때 내 옆으로 와 코를 골면 잠이 그대로 깨어버려서 다시 잠들지도 못해, 뭔지 모를 배신감에 약이 올라 발끝으로 있는 힘껏 남편의 엉덩이를 밀어버린 적도 있다. 나를 깨워놓고 어찌 그리 단잠을 자는지 얄미운 사람.

고쳐보려고 좋다는 차도 우려내 먹이고 약도 지어 복용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비염일 확률이 반반이라 들었는데 "비염입니다." 이 한마디가 어찌나 야속하던지.

같이 사는 남자 둘이 비염이라 자주 이비인후과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 일 년에 후두염으로 병원을 4~5번 찾게 되는데 어디를 다녀도 이만한 데가 없어 소개를 해보려 한다.


일단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좋다. 목 관리를 잘하셔서 그런 걸까? 목소리가 차분하고 말투도 브레이크 한 번 걸리지 않게 부드러운 화법을 쓰니 안정이 된다.

또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다.

어린아이, 성인, 노인 상관없이 항상 질문할 때 예의를 갖추는 그의 진료를 밖에서 듣고 있으면 어쩐지 빨리 회복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이야기를 그토록 집중해서 들어주는 사람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생긴 '후비루' 때문에 며칠 동안 가래가 목 뒤로 넘어가 침대 옆에 물컵을 가져다 놓고 자다가 컥- 소리가 나게 걸릴 때마다 뱉으며 혼자 서러워 울었던 밤. 

    

다음 날 목 아래에 멍울 같은 것이 잡히고 뻐근해서 이비인후과로 향했고 후비루가 내 일상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하루빨리 예전의 수면 패턴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 등을 그에게 이야기하는데, 한참을 내 말을 끊지 않고 듣던 그가 "가래 빼주고, 더 심해지지 않도록 주사도 놓아드리겠습니다. 또 이 약을 드시면 가래가 말라서 잠드실 때 많이 불편하지 않으실 테고 수면유도제 반 알과 같이 처방해 드릴 테니 푹 주무세요. 아직 항생제는 쓰지 않아 볼게요. 3일 뒤 부은 것이 가라앉지 않고 아프시면 그때 드릴게요."라고 말한 뒤,

" 고생 많으시네요. 물 많이 드시고 보양식도 챙겨 드세요. 후비루 때문에 다른 염증들이 발생하니 고약한 녀석인데 임신하셨던 분들 중 더러 출산 후에도 그 증상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하는데 그 말들이 큰 울림통에 날 가둔 것처럼 귀에 맴돌면서 참 위로가 되었다.

     

면역력이 저하될 때마다 제일 약한 부위로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데 나는 그것이 목이다.

목이 잠기거나 따끔거리면 여지없이 몸살 같은 증상과 두통, 후두염이 발생하는데 이 병원을 다녀오면 괜찮아질 거라는 그 믿음이 내게 큰 힘이 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믿고 찾아갈 수 있다는 것에 그와 이비인후과 의료진에게 감사한 마음이 항상 있었지만, 내 오랜 친구가 자신의 이비인후과 담당의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리니 고마운 마음이 한없이 더 커져 버린다. 

    

-생각해 봐. 그 의사는 매일 같이 매번 환자의 콧속이나 목구멍, 귓구멍을 보면서 진단해야 하잖아. 찐득거리는 콧물과 가득 차 있는 귓밥 같은 것도 보고, 또 같은 이야기를 여러 명에게 계속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지칠 것 같은 거야. 그 병원은 주말 진료도 다 하는데 저 의사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아이들이 오면 울고 소리 지르고.. 항상 가보면 지쳐있는 모습이라 안쓰럽기도 하고. 참." (친구의 말)

     

어떤 일이나 힘든 부분은 존재한다. 다들 그것을 버티고 스스로 다독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같은 견딤의 시간에 나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 친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똑똑한 이비인후과에 그는 늘 같은 마음의 결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참 놀라운 지점이다.

분명 불만의 목소리로 다그치듯 말하는 환자도 있었고 여러 번의 설명에도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고집하며 무리한 부탁을 하는 소리도 진료실 너머로 들려왔는데 그때마다 그의 흐트러짐 없는 다정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언젠가 한 번은 아이의 잠자리를 지키면서 많은 대화를 했고 그때마다 한쪽 귀에만 대고 큰 소리로 말하는 통에 어느 날 귀에 물이 찬 것처럼 웅웅 울리기 시작해 병원에 방문했을 때,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검사 결과를 전하면서 앞으로 잘 검진받으면 문제없을 것이라 했던 날.

자신의 아이도 소리 조절이 어려워 가끔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귓속말할 때도 있다고 말을 보탰는데 나는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그 이면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 놀랍도록 섬세한 나와 아이와의 관계를 배려한 그 한마디 덕분에 아이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미숙한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 번의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과한 친절을 억지로 꾸며내려 하지 않고 사랑하고 아끼는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 적정선을 만들고 사람을 대하는 기준을 지키는 참 멋진 의사다.

그런 그에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워낙 마음밭이 단단한 사람이라 이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는 당신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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