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가게

사장님들

by 엘리

20대 시절 아르바이트로 넥타이와 신발을 법원 앞에서 판매했던 적이 있다.

업체를 소개받아 그 회사 제품을 구매한 후 다시 소비자에게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이었다.

단골이 확보되기까지 여러 사람과 입씨름하며 힘들고 불쾌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내 얼굴에 신발 던지고 간 아저씨 아직도 못 잊는다 부들부들) 사람을 상대했던 그때 그 경험은 살면서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를 조용히 응원하며 다독여 주었다.


못할 게 뭐냐고. 그렇게 주도적으로 일하고 제법 많은 돈도 벌어봤는데 지금 이거 못할 게 뭐냐고. 다 할 수 있다고. 너 한다면 하는 강단 있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겪어봤는데 살펴보면 분명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니까 겁먹지 말라고 말이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다가 문득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이 생각났다. 아는 동생도 브런치 가게를 운영 중인데, 메뉴 개발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밤잠 설쳐가며 정성으로 준비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도 여전히 손수 조리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크게든 작게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은 원가계산부터 운영방식, 나만의 철학, 사람을 응대하는 방식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고 또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내 마음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때도 많다.


소비자가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사람임에도 서비스 제공, 소비심리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경쟁업체들에 밀려 쓰디쓴 폐업 신고의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가게 사장님, 즉 자영업을 하기에는 자질이 많이 부족하다. 여유롭지 못하고 하나 더 챙겨주는 덤에 인색하기도 하고 (꼭 물건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도 마음의 품이 작다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넉넉한 인심이 있는 인상도 아니라서 가게를 운영한다고 할 때, 정말 매력 있고 좋은 물건이나 음식, 정보가 아니라면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


내가 자주 가고 찾게 되는 곳의 사장님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나의 운영자로서의 부족함이 더 잘 보인다. 그들은 일단 상냥하고 친절하다.



"전에 가지고 싶어 하셨잖아요. 생각나서 드리는 거예요."

동네서점 사장님이 다른 책을 사며 만지작만지작 거렸던 노트 한 권을 내밀며 새로 구입한 책 위에 올려두고 밝은 미소로 건넨 이 한마디에 심장 쪽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면서 둥- 울렸던 기억.


"아이 너무 얌전하게 잘 먹네. 색깔 별로 다 골라가도 된다 아가."

"너무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필요하시면 작은 통에 잼 좀 덜어드릴까요? 제가 직접 만든 건데 맛 괜찮죠?"

고깃집에서 따뜻하게 사장님이 아이에게 건네었던 시선과 말, 친구와 같던 레스토랑에서 한 번 더 주문해서 먹은 잼을 기억하고 수줍게 이야기를 꺼내었던 사장님까지 그들은 나를 한 순간에 기쁨의 축제에 데려갔다.


그 공간들은 나에게 단순히 서점이나 식당이 아닌 좋은 기억이 있는 추억의 장소, 또 가고 싶고 소중한 이들에게 소개하며 자랑하고픈 나만의 다락방 같은 곳이 되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초록색 벽의 그 공간도 사장님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이곳에서는 잡담도 금하고 시끄럽게 하는 모든 요소를 배제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누군가의 배려, 친절 또는 그만의 철학으로 인해 단지 돈으로 거래되는 관계를 넘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경험을 주고받게 해주는 가게들. 그리고 사람. 자신만의 공간을 성실히 꾸려가는 사장님들.


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꾸준히 그들의 가게를 찾아가는 것일 테지. 언젠가 작은 공방을 해보고 싶은 내 소망을 위해 틈나는 대로 사장님이 되기 위한 소양을 쌓으려면 더 자주 가서 선배님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테고 말이다. 자주 찾게 되는 가게나 기억에 남는 사장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