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온기

반려동물

by 엘리

끄집어내자면 고통스러운 기억임과 동시에 행복한 추억이 되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이를 출산하며 두려움과 공포를 끝내고 안도감을 느끼던 그 해, 나는 두 사랑을 잃었다.

4월에 까미를, 9월에 미소를.


주인이 유기한 몰티즈. 그 후 슈퍼 가게 아주머니가 임시 보호하다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강아지.

정확히 몇 개월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개가 우리 집에서 웃을 일이 많게 되길 바라며 미소라고 이름 지었다. 그 녀석이 웃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배변 훈련도 순조로웠고, 식탐도 많이 없고 깔끔하고 영리했던 미소. 새끼 둘 낳았을 때 직접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 그 배를 가르고 새끼를 꺼내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마취해서 깨어나려고 힘쓸 때 이름 불러주며 쓰다듬었던 순간, 울적한 날이면 어느샌가 옆자리에 와서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로 나를 위로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동생은 그런 미소가 나를 더 따른다는 사실에 속상해했지만 미소는 그녀에게도 커다란 의지가 되었음에는 부정하지 않는다. 식구 모두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덜 외로웠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 진한 그리움을 느낀다.


까미는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교회의 성도인 할아버지가 주유소에서 데려온 까만 고양이었다.

젖을 갓 뗀 후라 몹시 작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혈기왕성했다.


고양이 특유의 재빠름과 호기심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가족을 여러 번 놀라게 했으며 간혹 멍청하다 싶을 정도의 행동으로 헛웃음을 짓게 만들면서도 그 자체로 너무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양이는 거의 액체에 가까운 형상으로 내 품에서 빠져나가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그르렁그르렁 골골골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까미의 털이 햇빛에 반짝이고 여러 갈래로 튀어나온 수염들이 들숨날숨에 맞춰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할 때 나는 눈으로 실컷 그 까만 고양이를 안았다. 앞발을 웅크려 자기 눈을 가리는 모습을 포착할 때는 조용히 신음하면서.


미소의 사료까지 뺏어먹다 동생에게 붙들려 혼날 때 시무룩하던 까미.

두툼한 엉덩이를 툭툭 만져줄 때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며 좋아했던, 사고를 쳐서 아빠에게 잔뜩 불호령을 듣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가 동그랗고 빛나는 호박색 노란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까미.


두 녀석이 가진 털의 색깔이 각각 흑과 백이라 그런 건지 종이 달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사이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나 (미소는 늙었고 까미는 젊었다) 둘 만의 방식으로 좁은 집에서 큰 문제없이 잘 지냈었다.


언젠가 이별이 다가올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만 2년이 되던 해에 까미가 병으로, 15년이 되던 해에 미소가 주어진 수명을 다함으로 그들은 2016년 내 곁을, 우리 가족의 곁을 영영 떠났다.

이 문장이 슬프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라 책상 위에 붙어있는 그들의 사진을 쳐다보기 힘들다.


말할 수 없어서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답답함이나 소망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아기와 함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기에 내 마음에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함께 자리 잡았다.


오늘 유난히 아침 가을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내 겨드랑이 사이와 다리 사이에서 잠들었던 그 둘의 온기가 그립다. 그 감촉을 잊고 싶지 않다. 그 냄새를, 그 소리와 몸짓 그리고 눈빛을 기억하려 글을 썼다.

쏟아내자면 단편소설 하나 분량은 나올 것 같은 두 녀석과의 시간에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그 둘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