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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13. 2021

당신

아버지

그들은 외톨이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받지 못했다. 밖에 나가 놀고 싶어도 동생들을 돌보느라 일찍 철들어버린 첫째, 주목받지 못해 엇나가기 일쑤였던 둘째, 유약하게 태어났던 셋째, 위로 오빠만 3명이라 소외당한 날이 많았던 막내까지 그들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며 성장했다.



그중에 첫째,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내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담임선생님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디며 교실에서 쫓겨나가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끝내 원하던 바를 이루지는 못했다.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최고의 무기라 생각하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다는 말에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곳에서 치열하게 버티며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가 잘 모아주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가 집으로 보낸 돈들은 형제들의 사고 합의금이나 학비 등으로 다 써버린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돈을 모아야 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딸 둘을 낳았다. '내 것'이라는 걸 챙겨볼 여유조차 없이 가장의 무게를 느끼며 정신없이 지나온 세월들.



더 풍족한 삶을 살고자 선택했던 일들이 실패로 이어지고 감당하기 힘든 빚이 되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의 무기력해진 모습을 예상했으나 그는 지나친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가진 자들에 대해 시기를 넘어선 분노가 일었다.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 허망하고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스스로가 초라하고 한심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자식들에게 달력밖에 선물할 것이 없는 처지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밤에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몰라 덜컥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다.



배우고 싶고, 나누고 싶고, 자신의 쓸모 있음을 인정받기 원하는 60이 넘은 남자.

익살맞은 표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농담을 자주 하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기가 꺾이지 않는 남자.

그는 아직도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이 고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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