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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20. 2021

권태

일상다반사

여자는 몇 십분 째 생각한다.

6년 동안 찾아가고 있는 이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아직도 맛있고 질리지 않는데,

내 앞에 저 남자는 왜 질리는 걸까.



음식을 기다리는 한참을 여자는 남자를 쳐다보기만 했다.

여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남자는 주문을 마친 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인스타그램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탐색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 있다.



대화 한 마디 없는 그 순간들을 꼿꼿한 자세로 상대를 응시하며 여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식전 빵과 샐러드를 허겁지겁 먹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포크로 뒤적거리기만 하고 얼마 먹지 못하고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 접시로 포크를 옮겨 칼로 자른 다음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이거지. 이 맛이지. 고깃집에서 냄새 맡으며 힘들게 내가 굽는 거 말고 요리사가 정성스럽게 조리해준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다고.'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는 첫마디를 떼었다.

"맛있다."

여자는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한 덩이를 입에 욱여넣었다.



접시의 반이 비어질 무렵 남자는 또 스마트폰을 꺼내어 만지작 거렸고 참다못해 여자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남들이 우릴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 것 같아?"

"남들? 갑자기 남들이 우릴 어떻게 보는지가 왜?"

"나한테 하고 싶은 말도, 궁금한 것도 없지? 내가 앞에 있는데도 계속 그것만 들여다 보고 나는 너만 쳐다보고.. 여기 식당에서 나만 멀뚱멀뚱 있어. 알아? 다들 대화하느라.."

더 말하려고 했으나 남자의 못마땅한 표정에 말문이 닫혀버린 여자였다.



-네가 먼저 말 걸면 되잖아?

남자의  한마디에, 그의 정리되지 않은 곱슬머리도, 삐죽빼죽 튀어나온 수염도, 고동색의 눈동자도, 즐겨 입는 자주색 와플 니트도, 마디 뼈가 뭉툭하게 튀어나온 기다란 손가락까지 질려버린  넘어서 싫어졌다.



싫다. 정말 싫다. 진짜 싫다. 완전하게 싫어.

남은 음식이 아까워 입을 꾹 닫은 채 눈을 내리 깔고 조용하지만 거칠게 고기를 씹어댄다.

두 사람 다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남자는 지갑을 꺼내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향하며 나지막이 말한다.



-미안해.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여자는 그를 바라본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속에서 쓴 핏물이 올라와 토할 것 같이 어지러운 이 상황을 여자는 간신히 버텨내고 있다. 한 마디면 되는 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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