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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an 01. 2022

분노의 1월 1일

새해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첫날이라고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를 게 있겠냐마는,

그래도 새해의 첫 시작을 이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시댁에서 시누이 식구 내려왔다고 오후에 시누이가 가기 전에 와서 얼굴 보고 점심 먹고 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갔더니 이른 아침에 온다던 늦잠을 잔 아주버님이 낮 12시쯤 출발하게 되는 바람에 오늘 하루 시댁에서 더 머물게 되어 서두르며 나온 게 무색해져 버렸다.



시누이의 아이 둘과 내 아들이 신나게 놀고 소리 지르고 싸우다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불편하고 짜증 나고 듣고 있으면 열불 나는 소리만 해대는 통에 성질이 솟구쳤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상황이 나쁘게 돌아가는 형태랄까?

말주변이 없어도 너무 없는 시아버님 때문에 내 화는 불붙었고(아이들한테 바보, 멍청이 소리를 왜 자꾸 해서 애들을 약 올리고 기껏 만든 장난감 부수면서 열 받게 하며 놀게 하는 걸까. 좋은 놀이법도 교육도 아니고..)



더 있다가는 소리 빼-엑 질러버리고 한바탕 할 것 같아서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섰다.

아들은 더 놀겠다고 엄마 혼자 가라길래 그러마 하고 남편에게 맡겨두고 터덜터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집이 제일이지. 아는 지인들에게 새해 안부인사 문자가 오고 답장을 하다가 문득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 이건 내가 원한 생활의 모습이 아닌데- 생각하는 찰나 동생에게 영상통화가 오고 한껏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한 숨 잤다.



결혼은 왜 해가지고.. 애는 왜 낳아가지고.. 하던 생각들이 잠 속에 묻혀버리고 어느새 다 분해되어 몽롱한 흔적만 남기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를 향해 인사하고 먹을 것을 내어준 후 나는 친정으로 내뺐다.



엄마 밥 먹고 동생이랑 와인에 치즈 올린 크래커와 딸기를 먹으며 알딸딸한 기운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컴백. 이런 시작도 있는 거지 뭐. 기록하기 위해 적어둔다. 이렇게 출발해도 연말에는 원하는 방향과 목적지에 잘 도착해 있을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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