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Jan 10. 2022

찍찍, 햄 씨.

동거

나는 쥐띠다.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도 아니고 신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해와 연결 지어진 동물이 무엇인가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은근히 물어보는 사람도 많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산다.



쥐를 묘사한 다양한 캐릭터 중에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쥐를 연상했을 때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기보다 특유의 길고 두꺼운 꼬리가 생각나면서 이내 생각이 멈춰진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아이가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혔는데(그건 정말 고문과 같았다.), 그 소원을 들어주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그래도 햄스터는 꼬리가 짧으니까.. 하고 승낙한 날 이후.




지금 내가 타자를 치고 있는 이 방에 그 녀석이 같이 있다.

하얀 털을 가진, 앞니 두 개가 길쭉하고 뾰족한, 콩알 반쪽만 한 까맣고 윤기 띈 눈을 가진 햄 씨.



이름은 햄 씨라고 아이가 지어주었다.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 듣기가 좋았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먹이를 갈구하고 영역표시를 하고, 먹고 자고 놀고 단순한 삶을 사는 녀석이 부러우면서도 길지 않은 수명을 알고 있기에 그와의 이별이 벌써부터 걱정되어 찡-하고 코 끝이 아리기도 하다.



성별도 모른다. 개월 수도 직원분이 대충 ~개월 되었을 거다 라는 말만 들어서 확실치도 않다.

그저 민들레 뿌리를 갉아먹는 걸 좋아하고 밀웜과 코코넛을 간식 중 제일 선호하며 밤마다 쳇바퀴를 규칙적으로 돌리고 이제 남편과 나, 아이의 목소리나 체취를 기억하고 구분하는 것 같다는 것만 안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경험은 나에게 아픈 기억이기에 최대한 막아보고자 했으나 아이와 남편의 끈질긴 염원과 설득에 저 녀석을 들였는데 개나 고양이와 달리 큰 교감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이 관계가 후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짧은 시간이라서 덜 슬프고 길다고 더 슬픈 것이 아님을 알기에.



차르르르르- 쳇바퀴 돌아가는 소리.

턱턱 턱턱턱- 급수대 핥는 소리.

샥샥샥샥샥- 재빠르게 돌아다니는 소리

튜튜 튜튜- 볼에 저장해 둔 해바라기씨 뱉는 소리.



작은 존재가 내는 살아있다는 알림음.

손바닥보다 작고 깃털보다 아주 조금 더 무거운 햄 씨.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지친 마음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숨통 트일 시간을 주고,

열심히 먹이를 찾느라 엉덩이만 보이고 머리를 굴 속에 파묻는 엉뚱한 모습으로 아이에게 웃음을 주고.

나에게는 추억할 수 있는 글을 쓰게 해 준 햄 씨에게 고맙다.



영원히 알 수 없을 햄 씨의 생각과 감정을 계속 모를 예정이라 그건 참 미안하고 속상하다.


찍찍.

나야.

내 맘 알지 찍찍?




작가의 이전글 분노의 1월 1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