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뒤꿈치가 아프다. 새 신도 아닌데 신을 때마다 뒤꿈치가 아픈 것을 보면 나에게 맞지 않는 신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꾸역꾸역 신는다. 악어무늬 모양의 세련된 스타일이 고급스러워서인지, 많은 신을 제치고 어김없이 그 신을 집어 든다. 잠시의 불편함이라고 꼬드기며 신어버린다. 그리고는 또 후회한다. 편안함보다 눈에 보이는 세련됨을 선택하는 나의 마음이 찔려서인지 뒤꿈치가 콕콕 쑤신다.
키 작은 나를 감추려고 소위 이홍렬 신을 신고 다녔던 때가 기억난다. 단신의 남자 코미디언이 통으로 된 높은 굽을 신고, 키를 억지로 크게 만들어 우리를 웃게 만든 프로가 있었다. 거기에서 유행이 된 통굽을 나는 오랫동안 애용했다. 통굽의 유행이 지났어도 굽 높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골반이 아프고 발바닥이 아픈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를 낳고 자연스레 높은 굽을 포기 했다. 굽 높이를 포기했다는 것은 ‘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서 아주 조금 내려놓음’과 ‘ '예쁜 외형보다 실용성’을 추구하겠다는 내 마음의 변화이기도 했다.
악어가죽 모양의 신발은 굽이 없고 납작하다. 거추장스러운 끈이 없어 빨리 신을 수도 있고 깔끔해 보여 자주 신었다. 문제는 그 신을 신고 나서의 상태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외형과 달리 딱딱한 재질의 신은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피로감을 안겨줬고 불편함을 가져다줬다.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이다. 외형보다 실용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내 마음에 ‘나이 들수록 우아하게 '라는 나만의 신념과 함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장’이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겉모습을 의식하며 맞지도 않는 신발에 꾸역꾸역 구겨놓았던 발들이 결국은 반란을 일으켰다. 뒤꿈치에서 , 엄지발가락 뼈까지 콕콕 쑤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