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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숍 가는 재미를 모르는 여자

by 엘샤랄라

수업과 수업 사이, 그 잠깐의 휴식 시간에 나는 손톱깎기를 찾았다. 깎아야지 하면서 하루, 이틀 미루어 이제는 제법 긴 손톱을 더 이상 저녁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졌다. 손톱이 길다 느끼는 건 부단히 상대적인 관점이다. 며칠을 미뤄 놓고,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이 몇 분이 참을 수 없는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결국 막간을 이용하여 손톱을 정리한다. 예쁘게 깎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저 신속하고 깔끔하게 깎아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초집중하여 정리된 손톱, 이제야 마음이 안정된다.


나는 수수한 외모는 아니다. 혹자는 내가 명품을 좋아할 것 같단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단다. 보이는 이미지처럼 세련미를 풍기며 도시여자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러한 도시여자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 한 가지 예로 네일케어다. 내 인생 네일케어받아 본 건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신혼여행 가기 전, 손발톱 손질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젤네일을 해봤다. 반짝임이 오랫동안 지속되니 기분까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코사무이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었을 때에 페디큐어를 하고 간 그 자체로 패션이 완성되는 듯, 내가 나의 손발톱을 볼 때마다 똥꼬 발랄함과 여성미를 한껏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 맛에 네일 케어를 받는가 싶었다. 하지만 젤네일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기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리해줘야 했고, 그때의 내 손톱은 그냥 원래의 내 손톱이었는데도, 이전의 화려함과 극명히 대비되면서 초라하기 그지없이 어쩌면 더 거무죽죽한 빛을 띠는 듯했다. 젤네일을 하기 전, 나의 손톱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핑크빛으로 생기가 돌았는데, 돌연 예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극명한 대조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한 동안 네일숍을 찾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 립스틱 몰래 가져가 엄마 따라 윗입술, 아랫입술에 바르고 좋아하는 여섯 살 딸아이를 위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겸 함께 네일숍에 갔었다. 엄마와 딸이면 할 법한 그런 데이트가 있다면 이런 걸까 싶은 로망도 한몫했다. 거기에 더해 가끔씩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함도 있었다. 갖다 붙이고 싶은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손톱은 영양분이 풍부해서 젤네일이 잘 발라지진 않지만 그래도 기분내기용으로 해줬다. 바르는 내내 어찌나 도도한 자세로 얌전히 앉아있던지 이 아이가 정녕 유치원생인가 싶었다. 파스텔톤의 핑크, 보라, 하늘색을 섞어가며 열손가락 모두 발랐다. 좋아하는 딸아이 얼굴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딸아이 따라 옆에서 뭘 바르긴 발랐었는데, 지금은 아무 기억이 없다. 전혀 기억이 없다. 딸아이 손톱만 바라봤다.


나에게 네일은 그저 덧없는 행위다. 그 덧없음이 나는 적응이 안 되었다. 주기적으로 다니며 기분에 따라 색을 바꾼다고 하는데, 나는 주기적으로 그렇게 시간을 낼 여유도 없었거니와, 두 손을 꼼짝 못 하고 그저 앉아서 손톱만 바라보거나, 입을 놀려야 하는 것도 취미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되려 손톱 주위로 피부가 벗겨지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젤네일은 손톱이 어느 정도 길어야 예쁘기에 내 성향 껏 짧게 자르지 못한다. 긴 손톱이 어찌나 성가신지. 무엇보다 성가신 건 연필 잡을 때다. 엄지와 검지가 맞닿지 못하고 손톱만이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기분이란.


컴퓨터 자판 칠 때는 또 어떻고!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손톱이 길면 피아노를 치듯 손을 둥글게 말지 못하고 다소 어설프게 손가락이 펴진다. 자판이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엄밀히 말하면 자판 잘못은 아닌데. 손톱이 길도록 내버려 둔 나의 게으름에 한탄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주저하는 덕분에 글을 천천히 쓰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항변해 볼까 하다가도 그래도 엄연히 노트북을 펼치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가 있는데, 그 맛을 어찌 포기하냐며 나는 싹둑 손톱을 자르고야 만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차 없이 잘라내고야 만다.


관리 좀 받는 듯해 보이고, 손에 물 안 묻힐 것 같아 보이고, 꾸밀 줄 알아 보이고, 세련되 보이고, 볼 때마다 기분을 설레게 한다한들, 다 모르겠고 나에겐 그저 거추장스러운 행위인가 보다. 그렇다 보니, 도시 여자 같지는 않은 것만 같다. 그렇지만 '솔직한 나'대로 사는 모습이니, 다음부터 우리 인사할 때에 손을 보고 인사하는 건 어떻겠냐며. 악수가 아니라, 손을 보여주며 인사 나누자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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