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식을 것 같지 않던 열기를 한소끔 식혀 줄 비소식이 들렸다. 중부 지방은 생각보다 폭우가 쏟아지진 않았고, 이따금씩 소낙비가 세차게 내릴 뿐이었다. 저녁거리 준비를 위해 오후 5시 즈음해서 딸 아이와 집을 나섰다. 차에 타자마자 잠시 주춤하던 비가 다시 내리려나 싶었는데, 장을 보는 사이 그쳤다.
먹구름은 어느 새 시야에서 멀어졌고, 새털같은 하얀 구름이 하늘 위를 보송하게 채워 넣었다. 뒷자석에 타고 있던 딸 아이는 그런 하늘을 보며 말한다.
"엄마, 봐봐. 저 멀리 먹구름이 물러 가고 있어."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서 '물러 가고 있다'는 문장 묘사가 가당키나 한가 흠칫했다. 뜻밖의 표현에 나는 놀라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연신 아이의 한 마디를 되뇌어 본다. '물러간다, 물러간다.'
비를 잔뜩 머금었던 잿빛 구름이 물러 가듯, 이제는 물러 갔으면 하는 일들이 살면서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다. 그 먹구름은 우리 삶에 근심이고 걱정이다. 머리 싸매고 걱정한다고 쉬이 물러날 일이라면 희망이라도 있지 어떤 일들은 도대체가 물러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일은 우리를 낙담하게 한다. 언제쯤이나 맑은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지.
하지만 곧 그 맑고 순수한 두 눈으로 보이는 대로 내뱉었던 아이의 말은 곧 미래가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이 슬며시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전해 줄 소식이 있어."
그렇게 또 하나의 먹구름이 물러 간 하루였다.
비가 내리는 날,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 이제는 무섭지 않고 싫지 않다.
그 또한 물러날 것이라 기대할 수 있기에.
오늘은 흐렸지만, 내일은 맑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