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를 때마다 힘들다

by 엘샤랄라

"심지어 우리들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정말로 알고 있는 용기가 뭔지 알지 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두 아이 겨울방학 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을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에 올랐다.

해발 395m로 초보가 오르기에 좋은 산이다.

산자락 바로 밑에 주차한 후,

가볍게 물통 하나 챙기고 시작점에 선다.

왔으니 오른다.

오르겠다 결심했으니 오른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괜히 왔나? 끝까지 오를 수 있을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오르고 이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오르기 시작하는 초반부터

숨이 헉헉 차니까 무심결에 두려움에 휩싸인 말들이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를 잠재우는 방법은 나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발과 숨소리가 박자를 맞추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렇게 다시 한발 한발 오른다.

그러다 보니, 1/3 지점에 올랐고,

또 가다 보니 조금만 더 오르면 될 것 같고,

그냥 그런 식이다.

별다른 요령도 필요 없이 그저 묵직하고 묵묵하게

오르고 또 올라야 도달하는 곳이 정상이다.

그렇게 정상에 오른 후에 내려올 때의 나는

용기백배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그렇게나 다른 것처럼

정상을 찍기 전과 후가 그렇게나 다르다.

마음 가득 '오늘도 해냈구나'라는 생각이다.

산을 오름으로 해서 얻어지는 운동 효과도 크겠지만,

'등산'은 특히나 흠뻑 적시는 땀과 함께

정신적 나약함을 불러일으키는 생각쓰레기들을

해치우기에 제격인 운동이다.

그래서 나는 산이 좋은가 보다.


나도 모르는 나의 용기는

부딪혀 봐야 안다.

미지의 세계다.

부딪힐 때마다 새롭게 세팅된다.

몇 번 해봤으니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강도를 조금씩 올릴 수는 있겠다.

몇 번 해봤다고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할 때마다 어렵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진다.

하지만 그 겸손은 나를 깎아내려서 생기는 겸손이 아니라,

나를 채워가며 절로 숙여지는 겸손이니

자연의 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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