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풍요롭고 강하다는 확신을 가질 때
상대에게 증오심을 느끼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사색이 담긴 한 줄을 읽고
나의 사색을 더해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아이교육서로 <스스로 사고하는 아이로
키우는 알파 세대 교육법 :: 공부 자립>이라는 책에서
무작정 긴 글을 읽어야지만 문해력이 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한 줄이 인상 깊었다.
수준 높은 벽돌책 정도는 읽어야 문해력이
어나더레벨로 올라갈 것 같은데,
단 한 줄의 수학문제를 읽는 것만으로도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단다.
저자의 그 말을 생각하며 오늘 문장을 읽는다.
하나의 문장 안에 원인과 결과,
문제와 해결책이 모두 압축되어 있다.
'증오심'에 대해 생각한다.
부득부득 이를 갈게 하고,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분노의 감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마음은 뜻밖에도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하나, 두려움과 불안
둘, 과거 경험
셋, 문화적, 사회적 영향
넷, 잘못된 정보 혹은 무지
다섯, 개인적으로 겪는 부당함
여섯, 질투와 시기
일곱, 공감력의 부족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우리를 증오케 하는 일들은
차고 넘칠 것만 같다.
특히나 작년 12월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고 있다.
특정 정치 집단에 대한 증오와
갑작스러운 비보로 인한 우울감,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앞을 알 수 없는 경제상황,
자영업의 몰락 등은 비난의 화살을 여지없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돌리고 싶은 상황이다.
그리하여 감정이 우선하는 군중은 서로 더 뭉치고,
어떻게 해서든 살 길을 찾아보려는 모양새이긴 한데
거리를 두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 입장에서는
피로감이 날로 쌓일 뿐이다.
우리는 소를 키울 테니, 나라는 당신들이 현명하게
이끌어 달라 했거늘 지금 나라가 이 지경이니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분노가 이글거린다.
이를 어찌 해소하면 좋을까 싶어
다시 니체의 문장을 곱씹는다.
우리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적으로 얽혀있는 일들과
정치, 사회적 상황들에 대해
그는 어떤 해결책을 던지고 있는가.
"스스로가 풍요롭고 강하다는 확신을 가져라."
그는 외부로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라 한다.
스스로를 풍요롭고 강하다고 먼저 인정함으로
우리는 증오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히 억지 다짐이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확신으로 포장되지 않길 바란다.
허상 속에서 허우적 되는 내가 아니길 바란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나에게 풍요롭다는 정도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스로 올라서야 하며,
나의 기준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수준에 올라서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에 집중한다.
나를 가꾸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가꾼다.
돈, 시간, 나의 에너지가 허투루 새어나가지 않도록
관리함으로 풍요로운 마음이 퐁퐁 샘솟는다.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함으로
쫓기지 않고 여유로우며, 날마다 강해진다.
표류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배가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고,
잡아야 할 키가 있다.
되려 그 사실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도
나 스스로를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된다.
부질없는 감정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기려는 마음, 이겨내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비우고 흘려보내면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만의 풍요로움과 강인함을
채워 넣는 일상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목요일 오전 10시,
한국 무용 배우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