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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두고 집 나갈 계획을 세웠다

by 엘샤랄라

"인간의 행동은 약속할 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초등 두 아이 엄마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본격적인 방학루틴으로

2월을 빠듯하게 채워 보내고 있다.

아무래도 세 살 차이 나는 오빠와 동생은

학기중보다 많은 시간을 붙어 있으니,

투닥거리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여기에 더해 루틴잡기에 가장 심란한 날은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이다.

그 두가지가 결국 만났다.


아들은 월요일마다 꼭 만나 노는 단짝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괜히 수학학원에서 요즘 힘들었다는 핑계를 대며

하루 쉬면 안 되냐고 애원이다.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친구와 더 오래 놀고 싶었단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그럼 아침에 한 시간 더 일찍

만나 놀아보라고 했다. 월요일에 해야 할 일을

일요일에 미리 해놓고 시간을 벌어보라 했다.


딸아이는 아침부터 매일 하는 공부를 주야장천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 인형놀잇감을 만지작 거린다.

얼른 해놓고 편하게 놀라고 타이른다.

결국 이 날은 무슨 일인지 저녁 먹고서야

과제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해야 할 공부를 마저 못해

9시를 넘겨서야 서둘러 마무리 했다.

둘째 공부를 봐주는 사이,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씻으러 들어간 첫째가

욕실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보니 옷은 이미 다 벗었는데 변기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신나서 '흔한 남매' 보느라

몸에 물도 안 묻혔다.

화딱지가 단전에서부터 확 올라온다.

'얼른 씻고 나오라'며 큰소리로 빽! 한 소리한다.

괜한 심술에 평소 내가 치우던

널브러진 빨랫감과 자기 물건을 스스로

치우게끔 한 후에 두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나는 감정을 다스릴 요량으로 책을 폈다가

펜을 붙잡고 옆에 있던 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감정에 기반한 아주 색다른 계획이 되고 말았다.

바로 집 나갈 계획이다.

'책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피신한다,

아이들 스스로 밥 차려먹고, 집안일하고,

일정 챙기고 숙제하도록 한다,

나는 아무 관여를 하지 않기로 한다,

새벽부터 나가서 내 수업할 때만 들어온다.'와 같이

철저히 감정에 기반한 계획을 노트에 줄줄이

써내려 나갔다. 아주 신이 나서.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냉동고에서 떡국을 꺼낸다.

조용히 아침을 준비한다.

수업을 시작한다.

어젯밤 혼나서 잠을 설친 아들을 깨운다.

집을 나가겠다는 계획은 결국 흔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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