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와 무관하게 두 팔을 걷어 부친다. 갑자기 청소 바람이 불었다. 매일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설거지, 청소기 밀고 바닥 닦기, 빨래 수준이 아니다. 매일 쓰고 있지만, 막상 눈여겨보지 않게 되는 것들에 눈을 돌렸다. 식기 건조대, 세탁기, 건조기, 에어프라이어, 가스레인지 후드청소, 전기밥솥 분해 청소 등등 그렇게 눈을 돌리니 닦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열심히 쓸 줄만 알았지 따로 관리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불편하지 않으니, 생각없이 쓴 탓이다. 그렇게 부엌부터 차례대로 뒤집어 놓는다. 부엌이 얼추 마무리되는 것 같아 보이자, 거실로 향한다. 다행히 거실은 얼마 전에 책장을 옮기고 가구 배치를 다시 하면서 크게 손 볼 것은 없었다. 다만 아이들 시켜서 책장 사이사이 먼지를 한 번 더 털어 냈다. 거실 밖으로 베란다가 크게 있다. 이 거실 베란다는 다시 안방 베란다로 이어진다. 안방베란다로 가는 길목에 문을 하나 달아 두었기에 거실에서는 안방 베란다의 상태가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청소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자, 눈에 거슬린다.
그중에서 전부터 정리하겠다며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못한 죽은 고무나무 화분 하나가 보인다. 집 안에 화분이 총 4개였는데, 그 어떤 화분보다 쑥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던 나무였다. 키우기도 어렵지 않다 하여 2021년에 들여놓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잎을 부지런히 피워내니, 키우는 재미가 남달랐던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2024년 후반부부터 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줄기 위쪽 색깔도 이상하다. 아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화분이 있었는데 그때 그 화분의 흙을 정리한다면서 고무나무 화분에 섞었던 일이 영 찜찜하게 마음에 걸렸다. 걱정스레 지켜보던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본다. 키가 커져서 서있기 힘든가 싶어 기댈 수 있게도 해주고, 해가 잘 나는 곳에 놓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잎은 생기를 잃고 결국 마지막까지 모두 떨궜다. 잎을 바치며 튼튼해 보였던 줄기가 이제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나의 불찰이다. 나무의 그런 모습이 싫었던지 무의식 중에 화분을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 치워 놓았나 보다.
오늘은 그 화분을 정리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더 살 수 있었는데 생을 일찍 마감한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쉽게 집에 들이지 않는다. 1미터 정도의 앙상해 보이는 줄기부터 정리한다. 그냥 통째로 화분에서 뽑아보려니 보기보다 잘 안된다. 줄기를 싹둑 잘랐다. 길이를 줄였다. 다시 화분 속에서 잘린 줄기를 잡고 뿌리까지 드러내려는데, 힘에 부친다. 죽은 나무가 맞는지 흠칫 놀란다. 무슨 힘이 이렇게도 센 건지, 앙상한 줄기만 생각하고 30cm 정도 되는 화분 속 실체에 대해서는 영 감이 없었다. 결국 내가 졌다. 화분 안의 흙을 손으로 파낸다. 조금씩 흙을 들춰내고 화분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뿌리를 보게 되었다. 흙보다 뿌리가 더 많아 보인다. 혹여나 제때 분갈이를 못한 탓으로 나무가 죽었나 싶은 생각이 스칠 정도였다. 몇 가닥의 굵은 뿌리 주변으로 잔뿌리까지 촘촘하다. 생명력이 깊이 박혀 있다. 손으로 일일이 흙을 덜어내고 파고 덜어내고 파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화분에서 나무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 명백히 드러나는 것만 보고 살았다. 보이는 것의 쓸모에만 집중했지 그 쓸모를 지탱시켜 주는 것에는 관심 둘 생각을 못했다. 청소기로 닦이는 바닥은 보여도 청소기 위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밥만 해 먹었지 압력밥솥의 고무 패킹부터 증기배출구 구멍 속 물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쭉쭉 커가며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피워내는 것만 보았지 이 잎과 줄기를 지탱하는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렸을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집 안의 화분 안에서 자라는 1미터 남짓한 화분 속 뿌리의 힘이 이 정도인데, 그렇다면 목을 뒤로 젖혀야지만 그 끝이 보이는 나무의 뿌리는 얼마나 아래로 뻗어 있는 것인지 새삼 가늠해 보게 된다. 어쨌든 나는 낑낑대며 마지막까지 뒤처리를 완료하였고, 정리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분해하고 뜯어보며 실체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나의 민낯을 드러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집안일에 있어 게으르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니 여기저기 게으름이 묻어 나왔다. 그 누구를 탓하랴 생각하며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 까고 뒤집고, 완전히 드러냈다. 죽은 고무나무의 화분과 실랑이를 하며 마지막에 그 뿌리를 힘껏 잡고 드러낼 때는 마치 소화되지 못한 음식들을 싹 게워내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화분이 토해내는 흙더미에 예상치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홀가분하게 자연으로 돌려보내 줄 생각을 하니 되려 더 서둘러서 정리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할 정도였다. 부지런히 닦고 치우며, 나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열심히 알아가고 있다 자부했는데 착각이었다. 위로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기 전에 아래로 혹은 뒤로 숨은 나를 유심히 관찰해 보기로 했다. 화분 안에 갇혀 있던 흙과 함께 자신을 토해 낸 나무처럼 나를 토해내고 조금씩 더 큰 자유를 선사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