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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콰렌스, 인생에 툭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by 엘샤랄라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이나 권태가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반복되는 일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어제 EBS지식채널 e에서 출판된 <생각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목차는 크게 4개로 나뉘어있다. 1장, 호모부커스, 나는 읽어야 산다. 2장, 호모파베르, 내 삶의 도구는 '글'이다. 3장, 호모사피엔스, 나의 생존 전략은 생각의 힘. 4장, 호모콰렌스, 질문 없는 A+ 인생을 사는 당신에게.


'호모사피엔스'는 들어봤어도, 호모부커스, 호모파베르, 호모콰렌스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뜯어보면 모두 아는 뜻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으니 제법 그럴듯하다. 게다가 책을 붙잡고, 문장으로 사색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하나하나가 모두 요즘 나의 화두이기에 흥미롭게 읽었다. 이 네 개의 인간 유형 가운데에 오늘 니체의 문장과 결을 같이 하는 유형이 있다. '호모콰렌스'.


어떠한 일이 맹목적으로 반복되도록 방관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질문하지 않아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문장 속 '생각하는 대로'라는 구절 안에서 '질문의 힘'을 느낀다. 우리는 질문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나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묻고 또 물어오며 다져온 인생이다. 그러다 마흔, 문득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4장, 호모콰렌스 옆에 붙은 부제, '질문 없는 A+인생을 사는 당신에게',는 또한 나의 이야기였다. 나의 인생이 A+였다기보다 남들 보기에 A+인생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 허상을 좇았다. 일주일이 수업으로 꽉 채워졌다. 주말에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밥 먹는 30분을 제외하고 계속 수업인 날도 많았다. 일에서의 성취와 보람은 있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끝이 어디인지 나조차도 몰랐다. 그때쯤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다시 나에게 물었다. 너도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시간이 필요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책으로 만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 생각을 다시 글로 옮겨 적을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간절했다. 내가 그토록 지금 간절히 바라는 그 모든 것들에 '경제적 자유'라는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건 나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이었다. 이제 '어떻게' 나의 욕망을 실현할 것인지 물었다. 입시를 마무리하고, 공석을 다시 메우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 나는 다시 도서관을 찾기 시작한다. 마음껏 책을 고르는 그 시간, 나는 그 누구보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서가 한편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빌려 온 책을 읽는다. '소유하기 위한 시간'이 아닌 '내가 존재하는 시간'이다. 아이들 밥상을 차려준다. 얼른 먹이고 치우기 급급했다. 이어지는 일정에 항상 쫓겼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과 함께 밥 먹는 시간에 여유를 첨가했다. 그렇다고 한없이 늘어지는 일정은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 좋다, 정서에 좋다는 의무감에 나누는 대화가 아닌, 그저 소소한 우리들의 수다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서로 발언권을 얻으려 난리다. 귀가 두 개라 하나씩 나눠 주기도 하고, 교통정리를 통해 순서를 정해주기도한다.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걱정 없다. 낯을 가림의 적재적소를 알아가고 있다 믿기에.


'질문 없는 A+인생'을 위하여 맹목적으로 달려오던 삶에 질문을 툭 던지기 시작했다. 그 질문이 나를 소유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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