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가 극복해온 일들만을 말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문장은 짧고 담백하다. 하지만 그 문장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낸다. 실타래가 풀리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지금 껏 풀어내왔다. 앞으로도 더 풀어내야 한다. 그 이야기는 모두 나의 이야기였고 또한 나의 이야기가 될 테다. 그렇게 쏟아내는 이야기가 바로 나를 위로해 주리라는 확신을 니체를 통해서 받는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기 시작하면서 지난하기 그지없어 묻어두고 싶었던 경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다. 꽁꽁 숨기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글쓰기 소재가 되어줌으로 나는 참 쓸게 많은 사람이구나 깨닫는다.
처음으로 전자책 쓰기에 도전했을 때, 나는 글을 쓰며 메말랐다 생각했던 눈물을 엄청나게 짜댔다. 쓰는 와중에 마흔 이전의 내 시간이 고스란히 머리 속을 스쳐가는데, 감정이 복받쳤다. 바로 그 감정으로 정신없이 글을 써댔다. 모두 내가 경험한 이야기였기에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 옮겨 적으며, 이제 그 경험은 내가 나를 극복한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나의 경험이라는 글쓰기 소재는 책을 쓰기 위한 작업에 몰입하면서 목차를 만남으로 한데 뭉쳐진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류하며 살아 온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 낸 서사가 된다. 왜 나에게 그러한 일이 닥쳤는지 비난하고, 원망하게 되는 마음에서 그래도 이만큼 해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자존감을 세우는 기적을 경험한다.
바로 그 자존감으로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내가 모두 겪은 일이었지만 한참이나 왜곡되어 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기억을 바로 잡는 시간이었다. 또한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사업장을 꾸리고 입지를 다지기 위해 버텨 온 날들을 서로가 기억해주므로 앞으로도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 믿게 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우리가 묵묵히 다져 온 시간이 지워주고 있었다. 막연하게 잘 되길 비는 마음을 버리고 땅 위의 감각을 느끼며 걷고 뛴다. 그리고 각자의 그릇을 빚는다.
그 그릇은 나만의 그릇이다. 내가 나의 그릇을 안다는 것이 결코 현실에 굴복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말이 아님을 이제는 알겠다. 내가 나의 그릇 크기를 철저하게 묻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나만의 철학과 관점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주변에서 듣게 된다. 무턱대고 뛰어들어 돈을 버는 데에만 급급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그릇을 알기에 분별한다. 그저 돈이 벌린다는 이유만으로 뛰어 들기에는 내가 떳떳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나에게 있어 가치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그릇에 금이 가게 두는 일이고, 그렇게 생긴 금은 결국 벌어져 내가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새어 나가게 하는 꼴이 될테다.
내가 온몽으로 겪어 극복해 온 일들이 나의 그릇을 만들어 나간다.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나에게 진실한 삶으로 변모하게 된다. 보여지는 것이 두려워 굳이 머리를 굴려 가며 허상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가랑이 찢어져 가며 좇을 필요가 없다. 그 동안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여기까지 온 나를 믿을 뿐이다. 결코 나의 영혼을 털지 않는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써왔던 '영끌'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대수롭게 생각한다. 진짜 내 영혼을 끌어 모아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