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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안목은 성숙해질 수 있다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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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관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

나는 관계에 있어서 성급했다.

아들에게 빨리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삼삼오오 어울려 놀게 해주고 싶었다.

무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욕구가 아닌 나의 관계 욕구였다.

처음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소소한 것들을

엄마들과 나누고 싶었고,

수업이 많아 여유롭게 아이 곁에서 머물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조급하게 달래려 했던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아이로 인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다가 또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아이가 누군가와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친구의

엄마가 나의 친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엄마가 처음인 나는 어쩌면 그 경계선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새로운 관계는 많아졌지만, 유독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관계는 되려 다른 곳에서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아이를 위해 뭐든 잘하고 싶었기에.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쓸 수 있는

관계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결이 맞는 사람을 구분했다.

또한 아이와 나를 조금은 분리하기 시작하였고,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에 대해 소통하는 일에 있어서

밖으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남편과

대화를 나눌 때에 해결점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소통해야 하는

대상은, 나와 나, 나와 내 자식, 그리고 남편이었고,

그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했다.


그러한 깨달음으로 다시 첫째를 지켜보았고,

둘째를 키웠다.

덕분에 아이들에 대해 소소하게 남편과

소통하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나는 나의 관계 욕구를 채워 나갔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함께 책을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관계 맺는 과정은 거리를 두고

지켜봐 주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믿고 충분한 시간을 들이며 바라보되,

필요하다면 한발 담그기도 하지만, 잠깐이다.

그러다 우연이 반복되며 인연이 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이가 활동하는 기관 안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꼭 한 명씩 결이 맞는 사람을 결국은 만나게 된다.

유별나게 고르고 고른 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커피를 한 잔 하고, 밥을 한 끼 먹는다.


가장 소중한 것부터 지켜나가니,

사람 보는 안목 또한 성숙해 간다.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많아지니,

관계의 양보다 질적인 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내 마음이 급하지 않으니, 순리대로 된다.

관계가 순탄하니 더욱 나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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