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 사건으로 나는 절절하게 나의 우매함을 또 한 번 느꼈다.
우매함의 시작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나의 판단력이다. 내가 거짓 없이 상대방을 대함으로 상대방 또한 그렇게 나를 대해주리라 기대했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으로서, 비교적 오래 알고 지냈으므로 웬만큼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만남의 뒤끝은 찝찝했다. 내가 하고 있는 말의 의도와 그녀가 하는 말의 의도는 지속적으로 어긋났다. 나의 관심사는 그녀의 관심사 밖이었고, 그녀의 눈은 항상 바빴다. 진실을 말하는 눈동자는 흔들림이 덜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시선은 뭔가 불안했다. 사근사근하고 친절 넘치는 말투 속에서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 같아 보였다. 별다른 물욕이 없는 듯 무심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면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믿고 싶은 눈치였을까. 하지만 그녀에 대해 전해 듣게 된 새로운 사실은 뒤돌아서면 그녀가 내뱉었던 말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정확하게 알게 했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배신감일까, 좀 더 깊이 있게 의중을 파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나 믿고 싶은대로 바라본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일까.
사실 그녀는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으로 일궈 나가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사는 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기생하는 삶'을 사는 그런 사람. '자신은 이제 내려놨다'라는 말은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욱더 '그 믿는 구석에 기대 보겠다'는 뜻이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에 과연 그게 지금 이 시점에서 '현명한 선택'인가 했던 그 선택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웃으며 '될 대로 되겠지'하는 무책임함을 보여 주었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나는 가볍게 '세상사 그렇지'라며 웃어 넘겼다. 알고 보니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철저하게 땀방울로 가치를 쌓아올리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툭 던져 넣어 봄으로 막연한 운에 기대는 사람. 그래서 하루를 일궈나가는 사람의 노력이 한 순간 무가치해 보이게 만드는 사람.
선배 엄마들은 누누이 말한다. 아이 친구의 엄마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라고. 그들이 하는 말을 순전히 믿지 말라고. 양파 같은 사람이 넘쳐 난다. 까면 깔수록 새롭게 무언가가 나오는. 어쩌면 그게 사람의 본성이기도 하겠다.
그 깊이를 읽어내는 심오함이 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면 평생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궁금해하지 않겠고, 파보지 않기로 했다. 시선을 돌려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올바른 대상을 찾아 그 심오함의 여정을 떠날테다. 그리하여 결국 내가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것은 다시 겹겹의 가면으로 쌓아올린 철학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