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마무리되었다.
학년 첫 중간고사는 '시작'이기에
특히나 힘이 많이 실리는 시험이다.
겨울방학 기간 어떻게 공부했는지,
향후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다각도로 생각해보게 하는
지침이 되는 이정표 같아서 시험 10일 전부터
수업과 아이들 양육에만 집중하였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지 못한
나의 명분을 쌓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마치자마자,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좋은 소식부터 들려 드릴까요,
나쁜 소식부터 들려 드릴까요?"
"좋은 소식!"
"아, 저희 둘 다 90점 넘었어요!
나쁜 소식은요, 틀린 문제가 사실 모두 맞힐 수
있는 문제였다는 거예요. 저희 괜찮은 거죠?"
학생의 마지막 말, "저희 괜찮은 거죠?"에는
시험지를 가지고 다시 나에게 왔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느냐 확인하기 위한 말이다.
"그건 시험지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ㅋㅋㅋ
그래도 90점 넘었다니 다행이다.
일단 남은 시험에만 올인해."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었나.
벌써 이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 지 3년 차가 되어간다.
기본적으로 성실성이 밑바탕이 되어 온 예쁜 아이들이다.
태도가 예쁘니,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 가르침에는 공부만 들어있지 않다.
학생들이 내 새끼가 되어갈수록
공부 이외의 것에 더 잔소리가 많아진다.
한 문제를 풀더라도 성심껏, 영어만 하지 말고
다른 과목도 신경 써줘야 한다고, 공부는 이래서 해야 한다고,
너희들이 대학에 가서 온전히 자립한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한다고,
내 새끼 같은 마음이 커질수록 잔소리가 많아지고,
따끔하게 혼내게 되는데, 아이들은 그럴수록 내 마음을 아는지
마음 상해하기는커녕 '더 열심히 할게요.'라며 수긍한다.
마음과 마음이 콕 닿는 그 지점이 있다.
하루, 이틀 수업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한 번 닿았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닿아야 한다.
그래서 공장식으로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
광고도 하지 않는다. 오직 입소문이다.
그냥 받지도 않는다. 만나보고 받는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부모님과 상의한다.
더 느슨하게 가르치는 편한 곳으로 가라 한다.
모두 애정이다.
그게 종종 어긋날 때도 있지만, 결국 와닿는 시점이 온다.
그때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점수'가 나온다. 딱 그 아이의 수준에서.
그래서 공부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고 믿고 있는데,
그 원칙을 흐려 놓는 어른들이 있어서
나 또한 종종 흔들린다.
나도 '어른'이기에 그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이가 들수록 공부에 집착하나 보다.
내가 하고 있는 가르치는 일은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에너지의 파동이
서로 어우러져하는 일이라,
AI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려면 '지식 전달'이 우선이 아닌
'사랑'이 전제된 가르침이 되어야겠다.
결국 '사랑'인데, '사랑'을 주는 직업이지만
받기도 하니 어쩌면 나는 한 동안 계속 이 일을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