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산을 23번 등반해 본 즈음에 쓰는 글

by 엘샤랄라

2024년 12월,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있는 산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집 주변을 돌며 항상 걷고 뛰기는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직전에 스스로 운동량을 조절하는 듯한 한계에 부딪혔다. 멈추면 안 되는 지점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만보는 찍었지만, 그 숫자가 나의 극한점은 아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몸에 여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나만 아는 '안이함'에 안주하려는 내 모습이 싫었다. 다른 장치가 필요했다. 종목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등산이다.


산 등반이 처음은 아니나, 마음먹고 주기적으로 산을 타보기는 처음이다. 계절은 12월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춥기도 하다가, 벌써 봄인가 싶을 정도의 따뜻함으로 산을 타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초반에 산을 오를 때에는 생각보다 몸이 가뿐하여 속도 조절이 힘들었다. 무작정 열심히 올라가다가 결국 정상에 도달할 즈음에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숨을 할딱였다. 내 몸의 소리에 귀를 막고 조금 더, 조금 더 빨리 오르고자 하는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결국 정상에 오르기 직전, 10여 개 남짓한 계단을 앞에 두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듯 보이는 큰 바위에 앉아서 한참이나 숨을 고른 후에야 정상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다. 그래도 꼴까닥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여기서 헬기에 실려 이 산을 내려가야 하나 잠시 아찔했다.


초보의 무지에서 온 속도감에 겁을 먹고, 뒤이은 두 번째 산행에서는 조금 더 일정한 속도로 산을 올라보고자 결심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나만의 속도로 가다가 3분의 1 지점에서 앞서 가시던 노부부를 만났다. 천천히 산을 오르시는데, 그 속도가 다소 느리긴 하였지만 들쑥날쑥하지 않아서 앞지르지 않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갖춰 입으신 단출한 등산복이며, 손에 쥐신 등산스틱이 딱 봐도 나의 '등산 선배'라 칭할만했다. 부부인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서너 보 앞서서 이끌고 계셨고, 그 뒤로 할머니가 뒤따라 가는 모양새였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다리는 무거워졌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어르신들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내내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나는 조용히 할머니의 발뒤꿈치만을 보며 묵묵히 올라갔을 뿐이다. 언제쯤 도착하나 멀리 볼 것도 없이, 먼저 가시는 분의 발 뒤꿈치만 보며 따라갔을 뿐인데, 어느덧 정상에 다다랐다.


겨울산은 특별히 눈에 담을 것 없이 흡사 먹으로 그려 놓은 듯 무심하게 턱 지면 위에 놓여 있었다. 볼 것이 없었기에 되려 정상만 보고 올라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모두 흑빛이었지만, 그 자태는 결코 비굴하지 않았으니, 매서운 칼바람에도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며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놓고 있음에 나는 비장한 마음을 품고 겨울산을 올랐다. 바람은 찬대, 정상에 오를수록 내 몸이 스스로 내는 열기에 추운 줄 모르니, 상대적인 온도차에 정신까지 번쩍 들면서 겨울바람이 혹독하게 추워도 정신만 바짝 차리며 부단히 나를 움직이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겠다며 더할나위 없는 자생력을 차곡차곡 몸 안에 채워 넣는 시간을 보냈다.


겨울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킬 줄 알았는데, 어느덧 봄이 오면서 꿈틀거리는 것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아이들이 개학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단연코 등산이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그 시간에 잠깐 올라야 하기에, 개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3월이라는 숫자에 속아 봄이 도래하였겠거니, 신이 나서 등산할 수 있는 일정을 짜보는데 난데없고 느닷없이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산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을 잠시 내려놓고 눈이 어느 정도 녹아서 오를 수 있기만을 기다리며 날씨와 눈치게임을 하다가 드디어 날을 잡아 오르는데, 입춘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내린 눈이어서 그랬는지 길이 전혀 정비가 되어있지 않아 중간중간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여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너무 위험할까 싶어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나의 '목표지향적' 성향으로 비추어 봤을 때 일단 오르기 시작한 산을 도중에 멈추고 내려오는 일은 위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체념 아닌 체념을 하며, 평소보다 더 천천히 내딛는 발에 집중하며 안전하게 오르자 하는데, 그 또한 색다른 재미를 부여하더라. 올라가고 있는 나 자신도 신기하고 올라가지고 있는 이 상황도 신기하니, 덥석 겁부터 먹고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기특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른 정상에서의 풍경은, 산을 오를 때의 어려움을 모두 잊게 해 줄 정도로 청명함을 과시하며 내 몸의 세포와 폐포, 그리고 눈과 귓구멍, 콧구멍까지 뻥 뚫리는 개방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싶은 충족감을 안겨 주는 것이 아닌가.


갈 때마다 쉽지 않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초입에 다다르면 오늘도 무사히 산을 오르고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의심이 스친다. 매번 똑같지만, 정상에 오르고 내려올 때에 그 성취감이 좋아서 나는 산에 중독 되어 간다. 목표가 눈에 선명히 보이고, 강사가 이끄는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타자가 주도하는 게임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좋아서 나는 산에 오른다. 더불어 집 근처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또 다른 자연의 경지를 -비록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산이지만- 배우는 계기가 되니, 나는 어제도 오늘도 산을 오른다.


'도장 깨기'를 하듯이 근처의 다양한 산을 올라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이 산만 탄다. 아직까지는 이 산이면 족하다. 넉넉하게 족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오르고 내리기에 적당하고, 매번 오를 때마다 부쩍 달라지고 있는 산의 풍경과 또한 매번 오를 때마다 배우고 오는 것들이 다채로워서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자주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랜만에 한 번 와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나 오르기 바빠서 그들의 얼굴 생김새는 기억하지 못하나, 발끝과 행색으로만 그 사람이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언제나 같은 산 오르기를 이제 고작 스무 번 남짓, 아직 이 등산 기록으로는 이 산을 모두 알았다 말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에 앞으로도 한 동안 하늘이 허락하는 한 이 산만 오를 것 같다.

keyword